당신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환대해 주었다. 그는 이름뿐 아니라 그 목소리만으로도 누구나 알 만한 아나운서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와 주어서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해 주었다. 그러한 행동의 선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나는 그가 진행하는 방송에 초청받은 것이었다. 최근 나온 책을 잘 읽었다고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늦은 시간의 촬영이라 초청하기도 미안하다는 그에게 더 늦은 시간이어도 괜찮다며 감사히 응했다. 그는 주로 질문을 하는 쪽이었고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평범한 질문들이었다. 방송에서든 인터뷰에서든 아주 여러 번 답해 온 뻔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이, 정말로 맑고 깊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가 ‘진심 버튼’이라는 것을 누른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그 버튼을 누르면 누구든 진심으로 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꼭 알맞은 질문을 건네고, 경청하고, 그 과정에서 없었던 이야기를 끌어낸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의 질문에 답하면서 울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듣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신간을 읽었고 거기에 2쪽 정도 언급된 아버지와의 일화가 인상 깊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그러나 별것 아닌 말을 했다. 어린 시절에는 자주 동네 뒷산에 가서 아버지와 잠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나는 그것을 키우겠다고 집으로 가져와 채집통 안에 두었다. 그때 아버지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섭아, 저 산에서 잠자리의 엄마와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빠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잠자리도 아이가 보고 싶을 거야. 그러니까 놓아주자.” 나는 그때 잠자리를 산이 향한 방향으로 모두 놓아주었다. 친구들은 잠자리의 날개를 뜯는다든가 하고 괴롭히는 일이 있었지만 나는 그 놀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내 팔이 뜯겨나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나에게, 다른 모든 것의 처지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는 법을, 자신의 삶으로 말해 주곤 했다.

어린 시절에, 그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초청된 사람들은 자주 울었다. 그뿐 아니라 그 주변의 사람들도 그랬다. 나는 그에게 곁에 앉은 사람들이 왜 우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타인에게서 진심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잘 알았다. 그러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묻고 싶었으나, 굳이 묻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이유는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그와 나는 처음 만났지만 그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나에게 내민 책에서는 여기저기 ‘읽은 티’가 났다.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나를 인터뷰하러 온 기자도 “바빠서 책을 다 못 읽었습니다. 그냥 하시죠” 하고 말하는 일이 있다. 게다가 그는 그 책을 얻기 위해 출판사에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대개는 출판사에 전화해서 책을 보내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편집자도 내가 방송에 나가는 것을 몰랐을 만큼 그는 굳이 그러한 수고를 하지 않았다. 대신 구독자에게 줄 선물까지 직접 인근의 대형 서점에서 구매했다고 했다. 책에는 그 서점의 도장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평범한 작가를 초청하면서도 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리고 선물하기 위한 책까지 굳이 자신이 발품을 팔아서 구매한다. 그러한 진심을 바탕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그에게 없던 이야기를 끌어낸다. 어쩌면 그는 진심 버튼이라는 것을 항상 누른 채 살아가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방송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문득 ‘당신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연결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그런 깊고 맑은 진심일 것이다. 구독자를 ‘맑음이’라 부르는 그에게, ‘당신은 사람들을 당신처럼 살아가고 싶게 해요’라는 말을 이 지면을 빌려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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