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혐오에 대응할 준비는 되어 있나읽음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동성애에 반대한다’,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대선 토론 방송에서 나온 말이다. 그것이 2017년 대한민국의 수준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고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시간이 되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쨌든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지만, 4년 동안 특별한 진전은 없었다. 시민사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모든 것을 걸고 나섰지만,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입법은 국회 소관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입장을 낼 수 있고 정부 발의도 할 수 있으며, 현행법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널려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 가운데 국회에서는 심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아쉬움이 있다. 혐오나 차별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선거 시기의 분위기는 임기 내내 이어졌으니 말이다. 지난 4년 동안 한쪽에서는 여성, 성소수자, 난민, 이주자를 대상으로 혐오를 선동하고 한쪽에서는 침묵하는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대선이라는 정치적 이벤트에서는 혐오의 정치가 힘을 발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혐오정치의 논리는 단순하다. 복잡다단한 문제들의 논점을 ‘우리 편’이냐 ‘적’이냐, 찬성이냐 반대냐의 단순 구도로 몰아 놓는다. 여성우대 정책 때문에 청년 남성들이 고통을 받는다고 하거나, 이주노동자들 때문에 내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경고한다. 난민 때문에 사회안전이 위협받고, 무슬림이 우리 문화를 파괴할 것이라고 선동한다. 단순하기에 강력한 소구력이 있다. 합리적인 의문을 차단하고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논법이 본격화되면 그 구도를 쉽사리 벗어나기가 힘들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의 혐오 선동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다.

혐오를 선동하는 정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골칫거리였기에 다양한 해법이 모색되어 왔다. 직접적으로는 정치인들의 혐오발언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혐오표현금지법을 두고 있는 국가에서 정치인을 기소하고 처벌한 사례도 있었지만,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대원칙과 충돌한다는 것이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정치인들의 수법에 속수무책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극우정치의 준동을 막는 데 그다지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었다. 일례로 독일은 강력한 혐오표현금지법을 가지고 있지만, 무슬림, 난민, 이주자에 반대하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이번 총선에서 10.3%나 득표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의 혐오발언을 법으로 처벌해서 문제를 해결한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혐오선동의 정치인들을 규제할
속 시원한 해법은 어디에도 없다
감시하고, 권고하고, 교육하고…
지루한 이 길 외엔 방법이 없지만
확실한 건 내 선택이 5년을 좌우

한국에서도 꾸준한 대응이 있었다. 선거에서의 혐오표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2018년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를 결성, 공직 후보자들의 혐오표현 사례를 수집하여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2019년 인권위는 국회의장과 각 정당 대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게 정치인의 혐오표현 예방·대응을 위한 규범 마련 및 자율대응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고,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인권위원장은 총선에서 혐오표현이 사라져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감시하고 권고하고, 예방하고 교육하고…. 답답해 보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만의 고민은 아니다. 세계 각국에서 정치인의 혐오표현이 문제가 되자, 2018년 국제선거제도연맹(IFES)에서는 선거 시기 혐오표현 대응에 대한 백서를 냈다. 공직 선거 후보자들의 혐오발언이 큰 해악을 초래한다고 경고하면서도 금지나 처벌 등 직접 규제에는 많은 부작용과 한계가 있다는 점을 동시에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고민 끝에 내놓은 대책은 다양한 정부·비정부기구들의 협력, 선거관리기구의 인식 제고 활동, 공적 대화와 논쟁의 확대, 혐오표현에 대한 모니터링·조사·연구, 선거 관계자들과 유권자들에 대한 교육·훈련 등이다.

속 시원한 해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루한 길을 걸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확실한 것은 대선에서 어떤 논쟁이 오가고, 어떤 입장을 견지한 후보가 당선되는가가 앞으로의 5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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