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뒤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읽음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한국 드라마의 성골 애청자로서 <오징어 게임>을 대표로 한 K드라마의 흥행은 괜한 자부심을 들게 한다. 전 세계 수많은 곳에서 한국 콘텐츠의 흥행 이유를 분석하고, 재빨리 관련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모두가 시청자이자 평론가가 되었다. 전과 비교했을 때 한국 드라마의 위상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음이 분명하다.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캐릭터들이 자신만의 서사를 훌륭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한데 안타깝게도 카메라 뒤편 사람들의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근로기준법이 사라진 현장, 주 120시간의 촬영 스케줄, 단골 숙소가 된 찜질방, 난무하는 욕설과 폭력 등. 매주 반복되는 드라마 방영일에 맞춰 스태프들의 삶을 깎아 내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 실태가 세상에 드러난 것조차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연이은 성공의 축포 속에 이들의 이야기는 점차 잊히고 있는 듯하다. 세상의 관심 화면에 보이는 서사에 머물러 있다.

흥행 성적과 관계없이 대부분의 드라마 제작환경은 열악했다. 온 국민이 사랑했던 <나의 아저씨>를 비롯하여 <화유기>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 <동백꽃 필 무렵> <아스달 연대기> 촬영 중 스태프가 다치거나 세상을 떠났다. 외국 회사라서 다를 것이라 기대했던 넷플릭스조차 한국 드라마 <킹덤>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마찬가지의 문제가 발생했다. 최근에 인기를 끌었던 <빈센조> <대박부동산>에서도 불공정 계약, 장시간 노동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힘들었던 지난 시절’의 문제가 아니다. 2021년 방송국, 드라마 제작사, 노조 등이 모여 노동환경 개선방안을 모색했던 협의체는 성과 없이 끝났고, 공영방송 KBS는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고 일을 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JTBC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 없이 ‘3개월 624시간 탄력근로제’라는 편법을 시행하다 문제가 되었다. 세계적인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는 한국의 방송산업이지만, 적어도 노동환경만큼은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딱 5년 전인 2016년 10월26일, 나의 친형 이한빛 PD는 방송 현장의 케케묵은 문제를 지적하며 세상을 떠났다. 모든 이슈를 잊기에는 5년이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누군가가 다치거나 죽어야만 경각심을 가지는 일을 반복하지 말고,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카메라 앞의 사람에서 카메라 뒤의 사람까지 다가가기는 열 걸음도 채 되지 않는다. 드라마의 성공에 찬사를 보내기 전, 제작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시청자로서 관심을 보이면 충분하다. 오스카 수상작인 영화 <기생충>은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주 1회 편성을 통해 흥행과 노동환경 개선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한 작품이야말로 드라마 성공 스토리의 완성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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