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항쟁 5주년,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의 인권과 삶]촛불항쟁 5주년,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5년 전이었는데 아득한 먼 옛일만 같다. 2016년 10월29일 비가 흩뿌리는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된 직후여서 몇천 명이나 모일까 생각했는데 3만명 넘는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났다. 그 촛불이 이후 6개월 동안 매주 주말 계속 타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촛불항쟁은 30만을 넘더니 곧 100만, 200만명을 넘어섰다. 그야말로 폭발이었다. 그 힘에 의해 불가능할 것 같던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탄핵을 결정했다. 시민들의 승리였다. 이명박·박근혜의 보수정권은 철퇴를 맞았다. 적폐청산의 요구는 드높았으며, 불공정과 불평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분명했다.

그 시절에 우리는 광장에서 희망을 노래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박근혜 탄핵 되면 내 삶은 달라지나요?”라고 묻던 비정규직 노동자의 질문은 사실은 모두의 질문이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분출했고, 그 결과로 “특권과 반칙 없는 공정사회”를 기치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그런 뒤에 2018년과 2020년의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에서 시민들은 적극 집권여당을 밀어줬다. 정권이 추진하던 변화는 시민들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듯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 시민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결정적이었다. 심지어는 ‘문재인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할 정도였다. 그때까지 야당은 존재감이 없었다.

촛불항쟁 시점 5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실망으로, 신뢰는 분노로 바뀌었다. 적폐청산은 흐지부지되었고, 개혁은 실종되었다. 한때 기대를 걸었던 집권세력은 기득권 세력이거나 그 편에 가깝다는 게 확인되어서일까? 국민들의 배신감과 분노가 차기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투표하겠다는 여론으로 굳어지는 듯이 보인다. 집권 가능성이 있는 거대 야당은 기실 권력을 사유화하여 국정을 농단했던 그 세력들이 여전히 주도하고 있는 당인데도 그렇다.

지금 인류는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기후위기는 지구 곳곳에 산불, 폭염, 홍수와 가뭄, 한파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우리에게 미래가 있기는 하냐고, 기성세대는 왜 이리도 이기적이냐고 따진다. 급격히 사라지는 일자리에 취직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한편에서는 부모 찬스로 자산가로 등장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갈수록 부는 한쪽으로 편중되고, 코로나19 상황은 더욱 그 경향을 가속화했다. 자살률은 젊은층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고, 매일 퇴근하지 못하는 노동자의 수도 줄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지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지지부진하고 여전히 안전은 비용 문제로 치부된다.

이 대전환기,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들이 대전환기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코로나19 상황을 겪고 있는 이때 누구나 아프면 무상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공공의료 체계를 만들겠다고, 출산율 저하가 심각하다고 한탄하면서도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도 경단녀가 되지 않고 승진과 임금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고, 보육료 걱정 없이 아이 키울 제도를 만들겠다고, 공약하지 않는다. 차별과 혐오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함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환대와 우정의 문화로 바꾸자는 제안도 없다. 지방 소멸위기를 말하지만 인력과 부와 에너지조차 지방을 착취하는 수도권 중심 개발정책의 방향을 선회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악화되는 양극화를 중단시키고 경제 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떼돈 번 플랫폼 기업을 규제해서 라이더노동자들의 안전과 노동조건을 확보해주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는다. 나아가 기후위기로 닥칠 재난상황에 대비하고, 기후악당국가에서 탄소중립이 아니라 탄소제로를 선도해가는 국가로 전환해가겠다는 공약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절망을 희망으로, 분노를 변화로, 불공정을 정의로 전환시킬 정치가 다시 배신당할 때 그때도 촛불이 타오를까? 누구도 상상 못했던 촛불항쟁처럼 촛불의 바다를 만들 수 있을까? 촛불항쟁 5주년을 맞아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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