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오징어와 ‘문어발’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옛 서울 도심의 영화관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스카라와 국도는 벌써 기억에 없어졌고, 명보도 옛 영화관이 아니다. 오래 고생해주던 대한극장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 같다. 그 와중에 서울극장도 문을 닫는다고 한다. 단성사는 벌써 극장이 아니고 자리로만 남았고, 피카디리도 그러하리라. 어떤 극장이든 주전부리 파는 행상과 리어카가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영화관 내에도 매점이 있었고, 심지어 판매상이 목판에 군것질거리를 담아서 상영 중간 쉬는 시간에 관객석을 돌아다녔다. 영화관 내에서 담배를 팔기도 했던 건 아스라한 추억이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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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인기 있는 건 팝콘이 아니라 마른오징어였다. 매점에서 구워서 당당히 팔았고, 극장 앞 최고 인기 메뉴였다. 물오징어와 마른오징어. 아마도 70, 80년대 서울사람들이 제일 많이 먹은 음식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미 냉동시설이 잘 가동되던 때라 사철 물오징어가 나와서 서민 밥상을 채웠다. 그 무렵 오징어가 한때 몇해 동안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대타로 인기를 끈 것이 쥐치포였다. 쥐치포가 극장 앞에 나온 것도 물론이다. 남해에 얼마나 흔했으면 쥐치포가 가공되어 오징어를 대신했을까.

열 마리 1만원이 공식이던 물오징어도 근자에는 두 마리, 세 마리가 고작이다. 1만원이란 허들도 깨졌다. 1만5000원에 네 마리, 이런 판매 숫자가 시장에 생겨났다. 올해는 다행히 풍어여서 물 좋은 오징어가 아직 시장에서 성하다. 지금쯤이 크고 실한 물오징어를 살 수 있을 때다.

극장 오징어 중에 80년대부터 보이던 게 이른바 문어발이다. 태평양에서 잡히는 원양 대형 오징어의 발을 문어발이라 팔았던 것이다. 그저 통명(通名)이라고도 할 수 있고, 속이려는 의도의 상인도 있었다. 하나 뜯어먹고 나면 턱이 얼얼했다. 오징어는 발이 열 개인데 촉수 역할을 하는 놈은 길고 가늘다. 이건 또 따로 말려서 처리했고 통통한 발을 문어발이라 팔았다. 얼핏 보면 부피감이나 색깔이 문어의 다리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사람들은 대왕오징어라고 했고, 그렇게 통용되었다. 문어발은 ‘가(假)문어발’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바뀌어 슬쩍 피해갔다. 실은 이 오징어는 대왕오징어가 아니다. 훔볼트 오징어라고 해야 맞다. 그러나 이름이 어렵고 대왕오징어가 두루 쓰이게 되면서 그렇게 불린다. 이 오징어는 체내에 암모니아를 품고 있어서 가공을 거쳐야 먹을 수 있다. 반찬용 진미채니 가문어발이니 하는 가공품에 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니, 가을 무렵은 오징어 전진기지라 할 동해안과 울릉도는 할복 작업으로 고양이 손도 빌려 쓸 시기다. 거의 모든 인구가 항구에 몰려 나와 잡힌 오징어 배를 가르고 덕장에 널어 말리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다는 때다. 요즘은 오징어가 잘 안 잡혀서 그런 장관은 보기 어려워졌다. 제일 만만한 간식이던 마른오징어의 시대도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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