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열풍에 대한 직관적 분석 1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오징어 게임’ 열풍에 대한 직관적 분석 1

<오징어 게임> 열풍이 쉽게 식지 않고 있다. 해외 유수 언론에서는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서 거듭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의 문화콘텐츠 전반에 대한 분석에 나섰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영화 <기생충> 등 연이은 한국 문화콘텐츠의 성공이 이제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불발탄처럼 어쩌다 터진 게 아니라 잘 매설해 두었던 불꽃이 터진 것이다. 우선, 해외 언론의 반응은 당황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싶다. 칸영화제, 아카데미 시상식 등을 통해 일종의 할당제처럼 내어 주던 한 자리가 아니라 단숨에 중심과 주류로 등극해 버렸으니 말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사실상 칸이나 아카데미는 서구문화 가운데서도 매우 엘리트적인 고급문화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고급문화를 선도한다는 자긍심을 가진 기득권, 엘리트로서 다양한 세계의 문화에 기회를 제공한다는 식의 선민의식도 있다. 노벨 문학상이나 유럽의 3대 영화제들이 대륙별, 인종별, 문화권별 안배를 늘 신경 쓴다는 것 자체가 이런 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드라마 <더 체어>에서도 드러나듯이 한국인, 한국어, 한국 제작자가 만든 <기생충>을 아카데미 주요 4개 부문 수상자로 밀어줌으로써 일종의 토큰을 얻게 되는 것이다. 소위 ‘우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라는 자정능력의 증거로 활용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좀 다르다. 우선 <오징어 게임>은 유서 깊은 기득권의 인증작용이 아니라 자본에 의해 선택되고 대중에게 인정받았다. 인증의 경로가 바뀐 것이다. 만약 대중적으로 이렇게 선호되지 않았다면 서구의 신망 높은 저널리즘이 이렇게 폭발적인 관심을 보일 리가 없다. 지금 소위 기득권을 누렸던 과거의 문화제국들은 새로운 강국으로 나타난 한국 문화에 대해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거, 아무래도 꽤나 지속적인 흐름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 게 분명하니 말이다.

<오징어 게임>은 매우 전형적인 한국적 서사이다. 각 문화권에는 나름의 마스터플롯, 메타 서사가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들은 자주 영웅이 등장해 가족을 구하고 국가를 지킨다. 요즘엔 지구도 지킨다. 마스터플롯은 크게 세 가지를 통해 구별된다. 취향, 경향, 지향이 바로 그것이다. 서구권의 서사와 한국의 전통 서사는 바로 이 세 가지에서 완전히 다르다. 새롭다.

우선 취향은 스타일을 의미한다. 한국의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리얼리즘이다. 한국에서는 사회적 관점을 보여주지 않고는 대중에게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사랑받기 어렵다. <광해> <암살> <내부자들> 같은 천만 영화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경향인데 한국은 매우 빠른 반응성을 갖고 있다. 부의 양극화가 피케티를 비롯한 학계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할 때 한국에서는 이창동의 <버닝>이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으로 나왔다. 경향성은 소재로 드러나는데, 소재가 매우 동시대적이며 현실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향은 결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개 대중영화들 특히 미국 대중영화들은 비현실적이라도 해피엔딩과 판타지를 지향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값싼 봉합이 잘 안 통한다. 영화로 봉합한다고 현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차이는 우리가 우리 것이라 너무 익숙하게 여겼던, 한국적 서사의 밑바닥 구조, 메타 서사에서 기인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다른 문화권 안에서 무척이나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매력이라면 바로 이 낯선 매력에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움직이는 것은 결국 공감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깊은 공감을 뜻하는 감동은 뜻을 풀어 보자면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한국의 이야기, <오징어 게임>의 사연이 전 세계 다른 언어와 문화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아마 훨씬 더 많은 연구, 분석이 뒤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공 요인을 분석해 복제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분석해서 똑같이 만드는 그동안도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이 거듭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이야기 시장의 헤게모니가 움직인 덕도 크다. 그런데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한국인에게는 오히려 너무 익숙하게 보일 정도로 매우 한국적인 서사라는 것, 그리고 그 메타 서사, 마스터플롯이 세계인에게 매력을 느끼게 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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