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해법, 자연 아닌 사회를 바꿔야

얼마 전 올해 첫 햅쌀로 밥을 지어 먹었다. 긴 가을장마와 이상고온으로 병충해 피해가 커서 특별히 더 소중한 밥이었다. 쌀을 갖고 오신 선생님이 “역시 밥맛이 좋아” 하시더니 문득 인제쌀은 값이 높다는 말씀을 하셨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생산량이 낮아서일까, 생산비가 높아서일까? 돌아온 답은 뜻밖이었다. “여기 쌀이 좋거든.” 쌀 품질이 좋아 값을 좋게 받는다는 것이다. 강원 양구, 인제, 철원은 옛날부터 쌀이 좋기로 유명하다는 말을 덧붙일 때 표정에는 자부심도 묻어났다. 나는 또 중요한 것을 놓쳤다. 농민들이 쌀, 벼, 논에 대해 관계 맺는 방식과 땅을 대하는 마음을.

채효정‘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자연과의 협동이 없이는 근원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농사여서 농촌 지역은 기후위기로부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위기에 대한 감각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감각은 땅과 작물이 겪는 수난을 함께 겪으며 자신의 몸에 새겨지는 고됨과 혼돈으로부터 온다. 극심한 기후변동은 농민에겐 늘어난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로 닥친다. 가을에도 계속된 여름 기온으로 배추는 녹아내렸는데, 갑자기 10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자 고추밭에선 얼기 전에 허리가 부러지도록 고추를 따야 했다. 다른 노동 현장이 그렇듯이 노동 시간과 강도는 사고 위험도와 비례한다. 게다가 예측 불가능한 날씨는 오랜 세월 쌓아온 기후 정보를 일거에 쓸모없게 만든다. 춘하추동 절기에 따른 농사 일력은 공동체 안에서 축적된 시간과 기술이 만들어낸 빅 데이터인데, 지금 그 지식 커먼즈가 모조리 파괴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지금 기술관료들이 설계하고 있는 기후 대응 정책이란 것은 어떤가? 배출량과 흡수량을 여기서 더하고 저기서 빼는 식의 산술적 탄소중립 셈법에 빠져 전환에 대한 민주적이고 사회적인 상상력을 완전히 봉쇄하고 있다. 전문가라는 이들이 농축산업 탄소저감 대책이라고 내놓는 비료와 사료의 저탄소 전환이나, 소와 논에서 나오는 메탄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농민들은 분노와 허탈감에 웃는다. 무지해서가 아니다. 전문가라는 이들이야말로 위기의 실체를 모른다 싶어서다. 현실에 대한 감각이 없으면 계산만 남는다. 탄소포집저장기술이라는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탄소흡수의 책임을 미뤄놓은 시나리오 작성자들은 저장지로 거론되는 채굴장의 규모를 알기나 할까? 기술적 불확실성만 문제가 아니라 그게 실현된다고 해도 포집 저장 과정 자체가 토지파괴 생태학살의 또 다른 현장이다. 지금 이 땅에 그 정도로 파헤칠 토지가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역공동체를 배제한 채로 시장 원리에 따라 무계획적인 태양광발전 시설에 농지가 잠식당하는 것을 보고 있는 이들에게, 시장화방식의 에너지 전환은 자본의 또 다른 토지 약탈일 뿐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탄소흡수원과 배출원으로 재구획하는 정책은 정책 대상이 되는 지역과 주민들에게 너무나 폭력적이다. 산촌의 공동살림터인 숲은 나무를 교체해서 탄소흡수력을 높이고, 소의 위장을 자동차의 내연기관처럼 생각하고 연료 대체로 온실가스를 저감시킬 수 있다는 발상은 인간이 자연을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근대문명의 사고방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노인들은 하늘에 변고가 생겼다고 한다. 맞다. 그런데 그 변고를 일으키고 있는 건 인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지속 불가능한 체제를 계속 지속하려는 인간이다. 탄소배출량은 산업혁명 이후로 꾸준한 속도로 증가한 것이 아니다. 탄소배출 그래프를 보면 배출량은 195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났고, 1990년대 이후로 더 가파르게 치솟는다. 에너지 사용량도 정확히 일치한다. 1800년부터 2015년까지 사용된 화석연료 중 50%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사용됐다. 근 200년간의 사용량이 근 20년 동안 써버린 양과 맞먹는 셈이다. 과학이 화석연료에서 나온 이산화탄소가 기후위기를 야기했다는 것을 밝혀냈다면, 이제 우리는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배출량이 폭증했던 이 가속 시점에 대해 정치경제학적인 해석을 해야만 한다. 이 가속 시점이 생태계 파괴와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된 시기와 일치하는 것에 대한 사회학적 원인 분석을 해야 한다.

우리는 자연의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인간이 만든 사회 체제는 바꿀 수 있다. 새로운 별을 창조할 수는 없지만 여기서 다르게 살 수 있는 인문적·예술적 창조력은 발휘할 수 있다. 역사 속에 기억된 공동체와 사회적 연대의 경험은 회복할 수 있다. 우리가 노력하면 자연도 응답한다. 대지는 그것을 지금도 지치지 않고 가르쳐준다.


Today`s HOT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앤잭데이 행진하는 호주 노병들 기마경찰과 대치한 택사스대 학생들 케냐 나이로비 폭우로 홍수
황폐해진 칸 유니스 최정, 통산 468호 홈런 신기록!
경찰과 충돌하는 볼리비아 교사 시위대 아르메니아 대학살 109주년
개전 200일, 침묵시위 지진에 기울어진 대만 호텔 가자지구 억류 인질 석방하라 중국 선저우 18호 우주비행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