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인색한 ‘내부고발 보상’

조미덥 산업부 차장

페이스북에서 2년간 일했던 프랜시스 하우겐이 이달 초 페이스북의 비도덕성과 불법 혐의를 내부고발해 미국을 뒤흔들었다. 필자의 관심은 ‘그가 어떻게 페이스북이란 골리앗에 홀로 맞설 수 있었을까’였다. 여러 외신을 통해 찾은 답은 기여에 걸맞은 보상과 사회적·법적 지원이었다.

조미덥 산업부 차장

조미덥 산업부 차장

미국은 내부고발로 국가의 수익(합의금·과징금 등)이 발생하면 수익의 10~30%를 고발자에게 보상한다. 보상 비율은 기여도에 따라 정해질 뿐 액수가 높다고 비율이 낮아지지 않는다. 그 덕에 최근 도이체방크 금리조작 제보자처럼 2억달러를 보상받는 일도 가능하다.

미국에선 비영리단체들이 내부고발자에게 물리적인 신변 보호와 숙소·생활비를 제공한다. 변호사와 홍보 전문가들이 내부고발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법적 분쟁에서 지지 않을 전략도 같이 짠다. 미국 빅테크 기업이 몰려 있는 캘리포니아주는 올해 ‘침묵중단법(Silenced No More Act)’을 통과시켜 직원들이 비밀유지 서약을 두려워하지 않고 회사의 괴롭힘과 비리를 고발할 수 있게 했다.

한국에선 어떨까. 2016년 경향신문을 통해 현대차의 세타 엔진 결함 은폐를 내부고발했던 김광호씨(59). 그의 제보로 한·미 정부의 조사가 진행됐고 수백만대의 자동차가 리콜됐다. 하지만 김씨는 영업기밀 유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회사에서 해고됐다.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이후 국민권익위에서 공익제보자로 인정받고 복직 결정도 받았지만,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없어 바로 퇴사했다.

권익위에서 역대 최대 포상(2억원)을 받았지만, 억대 연봉을 받던 그가 포기한 수입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한국 정부에서 추가 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예상 보상금(약 3400만원)보다 큰 포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난 미국 정부의 보상 제도가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지, 한국 제도에만 기대어 내부고발을 할 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2430만~4110만달러(약 280억~480억원)로 예상되는 보상금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6월 권익위는 내부고발자의 보상 상한(30억원)을 없애고, 보상액이 올라갈수록 구간별로 30%부터 4%까지 낮아지는 보상 비율을 30%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부패방지권익위법 시행령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올렸지만 보류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환수금이 1000억원이면 보상이 300억원이라 과도하다’는 취지의 문제를 제기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우려는 한국의 실제 사례와 괴리가 크다. 권익위 통계에 따르면 2009~2019년 내부고발에 대한 보상은 건당 평균 2200여만원, 보상 비율은 환수액의 8%에 불과하다. 역대 최대 보상도 11억원에 그친다. 생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냥 두면 묻혔을 1000억원의 비리가 세상에 드러나 국가에 환수됐다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일이 알려지면 방산비리와 같은 비리 카르텔이 깨지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안 그래도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한국에서 내부고발자가 소송·해고·비난을 감수하고 나서려면 보상밖에 기댈 곳이 없다. 정부가 보상 현실화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더 이상 내부고발자의 의로움에만 기대어 제도를 운영할 수는 없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