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은 왜 윤석열을 밀까

이기수 논설위원

“선이 굵다.” 일이나 자리를 맺고 끊는 진퇴가 분명하고, 직언도 불사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다. 근래 10년의 정치판에선 김종인을 갑(甲)으로 친다. 여야에서 킹메이커와 경세가 소리를 들은 그에게 ‘굿바이 김종인’이라고 쓴 적 있다. 지난해 봄, 보수야당의 ‘선대위 원톱’을 맡으려다 자중지란이 일자 스스로 물러났을 때였다. 정계은퇴한 걸로 봤다. 하나, 황교안의 삼고초려에 그는 맘을 돌렸다. 그날 내 정치메모엔 ‘집념일까 미련일까 자존심일까 중독일까. 김종인은 정치를 떠나지 않는다’는 소결론이 적혔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4·7 서울시장 보선에서 이긴 다음날 그는 “자연인”을 다시 택했다. 당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그 말대로, 김종인은 사람을 픽했다. 윤석열이다. 봄에 불가근불가원하다, 여름엔 가까운 이들이 캠프로 가더니, 가을엔 직접 윤석열만 돕겠다고 경선판에 뛰어들었다. 정치멘토를 공식화한 셈이다.

그러기까지 김종인은 여러 번 소리를 높였다. 6월엔 어묵 먹는 윤석열의 민심투어를 “과거 정치”라고 혹평했다. 비전을 내놓는 게 먼저라고 했다. 7월엔 국민의힘 입당을 늦추라 했다. 밖에서 지지층을 더 넓히고, 나중에 보수후보 단일화를 해도 된다고 권한 것이다. 8월엔 이준석 대표와의 ‘돌고래·멸치’ 싸움도 그치라고 했다. 무너진 지지율 고점을 회복하라는 말이었으나, 윤석열은 미적대거나 엇갔다. 돌고 돌아서, 김종인은 왜 그런 윤석열을 밀고 있을까.

①승부는 기울었다 = 김종인은 “국민의힘 대세는 윤석열”이라고 공언한다. 당심에서 과반을 점한 윤석열이 당원투표 비중이 50%로 높아진 최종 경선에서 이길 걸로 보는 것이다. 선두를 다투는 홍준표에겐 “돕지 않겠다”며 역선택의 덮개를 씌운다. ‘탄핵의 강’을 넘지 못한 유승민, ‘MB 장학생’으로 승승장구하다 중앙정치에서 빠진 원희룡은 힘이 달린다고 보는 것일 테다. 윤석열의 대세론을 노정객은 보수의 현실로 읽고 있다.

②대선은 새 출발로 = 김종인은 의외의 말을 한다. “윤석열이 (후보가) 돼야 무슨 새로움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당내 주자들은 평가절하했던 비대위원장 때가 소환된다. 그가 대선 잣대로 중시하는 게 새 출발이다. 2012년 마주 앉은 김종인에게 왜 박근혜냐고 물었다. “재벌에 빚진 게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훗날 물거품이 됐지만, 경제민주화를 설계할 때 박근혜의 장점이라고 본 것이다. 독특한 눈과 접근이었다.

③그의 롤과 공간 = 김종인은 ‘권력을 좇는 자유인’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권력자 옆에서 정책 날개를 펴려 한 삶이었다. 회고록(<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도 프로이센 비스마르크 재상과 키신저 미 국무장관을 표상으로 삼았다. 비스마르크가 제국을 일군 20년을 ‘빌헬름 1세 시대’라 부르지 않고, 닉슨 대통령의 외교는 키신저의 거울로 본다면서…. 윤석열 옆에만 그의 역할과 정책 공간이 있다고 보는 것일 수 있다. 그는 박근혜도 문재인도 위기일 때 손을 잡았다.

김종인의 정치엔 입에 달고 사는 열쇳말이 있다. ①때를 기다려라. “야당은 여당의 실수를 먹고산다. 여당이 잘하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고 말한다. ②자강(自强)이다. 통합·영입 만능파와 언쟁할 때마다 ‘패하지 않을 진지를 먼저 세우라’는 <손자병법> 구절을 곧잘 인용한다. ③민심의 발걸음 소리를 들어라. 선거에서 이기고 진 교훈을 새기지 못한 세력은 망했다고 정치사를 쓰고 있다.

김종인은 다시 나설까. 캠프는 ‘안정감’과 ‘상왕’ 이미지가 함께 그려진다. 그가 지휘하는 선대위는 이준석이 한발 물러나고, 앙금 있는 윤파 중진들(주호영·권성동·장제원)과의 이해·조정이 전제된 것이다. 윤석열은 벌써 내락했을 수도 있다. 실언의 풍파가 쌓인 누란지위(累卵之危)니까…. 판세 읽고, 메시지 가르고, 친이·친박·친황·국민의당 사람이 섞인 캠프를 이끌 좌장을 찾고 있으니까….

김종인은 야권 승리를 “60~70%”로 본다. 바둑으로 치면 낙관파다. 서울과 ‘이남자’ 우세, 대장동, 이낙연 지지자 분열을 주목한다. 윤석열 수사는 남아있는 고비다. 이준석은 세대·지역 투표율과 후보 상품성을 따져 “지금 투표하면 5% 진다”고 본다. 누구 말이 맞을까. 어느 쪽이 이기든 박빙일 것이다.

대선이 20주 남았다. 송사·설화·내분·정책 변수가 돌출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김종인과 민주당의 선택은 같다. ‘이 사람’으로 붙어봐야 할 듯한, 어찌 보면 외통수다. 김종인의 바람대로 윤석열이 보수의 얼굴이 될까. 아니면, 전혀 다른 대선으로 리셋된다. 보수의 결정도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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