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장밋빛일까

차준철 논설위원

해마다 이맘때면 내년을 예측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는 아닐 테지만 웬만한 내년 전망서에 어김없이 들어 있는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메타버스(Metaverse)다. 올해 출발기를 거친 메타버스 시대가 내년부터 본격화한다는 얘기가 많다. 지난해 말부터 세계적으로 퍼진 메타버스가 급속도로 확산해 최신 트렌드를 넘어 사회·경제 전반의 대세로 자리잡는다는 전망이다. 한때 반짝하는 유행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20년쯤 시장을 주도하리라는 예상도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던 메타버스가 어느새 실제 일상생활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차준철 논설위원

차준철 논설위원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는 익히 알려져 있다. ‘현실 너머 세상’을 뜻하는데 ‘가상현실’이나 ‘가상세계’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나의 아바타가 존재하는 게임이나 소셜미디어 공간쯤으로만 여겨서도 안 된다. 젊은 세대의 전유물도 아니다. 메타버스는 실생활이 똑같이 이루어지는 또 다른 세상이다.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럿일 수 있다. 세상 1, 세상 2, 세상 3, 세상 4…. 현실과의 경계는 갈수록 무너지고 있어 종국에는 어느 쪽이 진짜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가”라고 했던 그 옛날 장자처럼, 메타버스 속의 나를 외려 진짜로 여길 법하다.

메타버스가 확 뜨고 있기는 하다. 메타버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디지털 기술 발전과 더불어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비대면 온라인 전환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는 가볍게 놀고 즐기는 일탈의 공간이었다면, 올 들어서는 일상생활의 다양한 영역을 구현하는 장이 됐다. 게임·엔터테인먼트 외에도 회사·학교의 신입생 연수와 업무·수업, 각종 공연·전시·축제, 정당 행사, 집회, 스포츠 중계, 결혼식 등이 메타버스에 등장했다. 안 나오는 게 없다 할 정도다. 국내 각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신산업·신기술로 보고 시장 선점 경쟁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어느샌가 ‘접두사 K’가 붙은 K메타버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 등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도 메타버스 공략을 이미 선언했다. 최근 내부 고발자의 폭로로 위기를 맞은 페이스북은 조만간 회사 이름까지 바꾸며 메타버스 회사 전환을 앞장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지금 메타버스는 장밋빛 미래를 주로 그리고 있다. 현실 못지않거나 현실보다 실감나는 세상이 열린다니 편리함이나 재미만으로 따지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또 메타버스는 온갖 즐길거리가 넘치는 테마파크 이상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사회의 거의 전 부문이 그 안에 구축되면 출퇴근하고 일하고 만나고 쇼핑하고 여행하는 일상을 누리는 게 가능하다. 어쩌면 메타버스 안의 또 다른 내가 비대면으로 사회생활과 경제활동을 마음껏 하면서 현실보다 알차고 보람된 삶을 살 수도 있다.

이런 세상이 그려지고 있으니 메타버스를 모르면 큰일 날 것 같다. 자칫 머뭇거렸다가는 흐름에 뒤처질 뿐 아니라 고립될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메타버스에 얼른 올라타라”고 재촉하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일 테지만 과하게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 이 때문에 지금의 메타버스 열풍에 허황된 거품이나 장삿속이 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메타버스의 실상과 미래를 더 정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비견되기도 한다. 인터넷이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처럼 세상이 획기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비대면으로 실시간 쌍방향 소통이 원활하고 경제활동까지 이뤄지는 플랫폼이 새로 생겼으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장밋빛 미래를 꿈꾸기에 앞서 알아둘 일이 있다. 메타버스도 결국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거기에 현실이 펼쳐지면 장밋빛만은 아닐 게 분명하다. 백화점이 있으면 도박장도 있고 부동산 거래가 되면 무기도 팔릴 것이다. 범죄와 비행은 없을까. 화려하고 즐거운 겉모습의 메타버스 사회의 이면에 고통받고 소외되는 사람들은 없을까. 제아무리 그럴듯한 플랫폼 세상이라 해도 사람들이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역시나 사람이 중심인 메타버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메타버스 시대를 바라보면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나아가는지 감시해야 하는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 메타버스의 효용이 인간성보다 중시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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