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장과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가 노태우 제13대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하자 일부 시민사회에서 반발하는 등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란의 배경에는 헌법상 대통령의 지위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가치적 평가가 교차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장은 국가장법에 따라 국가가 주관하는 장례이다. 국가장법은 제1조에서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경우에 그 장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집행함으로써 국민 통합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함을 선언하고 있다. 국민적 추앙을 받았던 사람의 장례를 통해 국민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장인 것이다. 2011년 국가장법으로 전면개정 되기 전 1967년에 제정된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는 국민 통합이라는 궁극적 목적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적 추앙을 받은 사람의 장례라는 국가장의 정의 자체가 이미 통합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최종 국가장 대상의 결정은 유족 등의 의견,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 국무회의의 심의, 대통령의 최종 결정이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런데 국가장법 제2조는 그 대상자로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라는 포괄적 요건 외에 전직·현직 대통령과 대통령 당선인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여 국가장 후보로 하고 있는 특징이 있다. 현재 고인의 공과에 대한 논란에서 보듯 전·현직 대통령은 자동적으로 국가장의 후보가 되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 보니 매번 장례를 두고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러한 입법구조는 군사반란이나 쿠데타와 같이 비정상적 정권수립이나 교체의 역사가 아직도 현재적 의미를 가지는 상황에선 오히려 국민 통합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자기모순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군사반란과 쿠데타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토대를 무너뜨린 범죄라는 점에서, 특히 그 역사적 과오에 대한 적극적 부인으로 피해자의 고통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통합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열악한 정치사회적 조건 속에서도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당사자들은 물론 동시대인의 갈등이 사죄와 용서의 과정을 온전히 거쳐 통합의 기반을 구축해야 할 과제를 이번 국가장 논란이 일깨워 주고 있다.

한편 이번 국가장 논란에서 추가적으로 헌법적 성찰이 필요한 부분은 국가장법이 왜 대통령이라는 공직만 특정해서 공훈자이자 국민적 추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후보자격을 부여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헌법은 민주공화국을 국가형태로 선언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정의와 그 구성요소에 대해 다양한 연원을 가진 정치철학적·헌법적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이 명문으로 선언한 핵심원리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주권재민과 권력분립이 그것이다. 주권재민 원리에 따라 민주공화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있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모든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가 기본적 지위다. 또한 권력분립은 독재를 부정하고 국가권력 사이에 상하우열이 없는 수평적 관계를 전제한다. 대통령은 헌법상 국가의 원수이고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지만 이러한 지위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여 권한은 형식적이며 의례적인 행위에 국한되는 입헌군주국의 군주에 비유된다. 따라서 모든 국가권력을 의례적으로 대표할 순 있어도 실질적으로 다른 국가권력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국가원수의 지위를 명분으로 다른 헌법기관보다 우월한 국정전반의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실질적 지위는 행정권을 부여받은 정부의 수반이다. 따라서 입법권을 가지는 국회나 사법권을 가지는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와 동격인 국가권력의 하나인 행정권의 최고책임자일 뿐이다. 제한된 임기를 가지고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어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관복 입은 시민’을 국민의 추앙을 받아야 할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법률이 미리 정해 놓는 것이 주권재민과 권력분립이라는 민주공화정신과 조화될 수 있을까?

대통령을 동료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입헌군주국의 군주처럼 당연한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간주하려는 법의 태도는 입법권과 행정권의 배분형태에 불과한 대통령제 정부형태의 의미를 과대해석하여 대통령직을 봉사자의 지위가 아니라 통치자의 지위로 인식하는 독재적 대통령제의 유산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국가장법을 민주공화정신에 입각하여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