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디 서로를 돕자읽음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향모를 땋으며>는 벽돌만큼 두껍지만 계속해서 읽고 싶은 책이다. 식물생태학자인 로빈 윌 키머러가 썼다. 왁자한 탄생 신화와 함께 이 책은 시작된다. 여러 종의 동물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바람과 물과 진흙을 나르는 것이다. 결코 순조롭지 않은 과정인데 어찌어찌 방법을 찾아내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귀엽고 짠하고 감탄스럽다. 마침 같은 대목을 읽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세상이 만들어질 때 우리가 서로 도왔다는 얘기잖아.”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나는 ‘정말이네’ 하고 새삼 실감한다. 세상이 만들어질 때 우리가 서로 도왔다는 이 간단한 문장이 왜 사무치는 것일까? 서로를 돕는 존재들이 귀해서이다. 그리고 세상은 지금도 만들어지는 중이어서이다.

우리는 내일이 올 것임을 안다. 그 믿음 때문에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결코 견디지 않을 것들을 견디거나 결코 바꾸지 않을 것들을 바꾼다. 기후위기에 대한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내일과 내일모레, 1년 뒤와 10년 뒤, 30년 뒤를 상상하고 희망하고 절망할 줄 아는 능력이다.

10월30일부터 11월12일까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중대한 회의가 열린다. 다가올 세상을 만드는 자리다.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의 약자인 COP라는 이름의 총회이며 올해 스물여섯 번째로 개최된다. 첫 총회인 COP1은 1995년에 열렸다. 기후변화 대응은 약 40년 전에도 이미 이슈였으나 탄소배출량은 50% 이상 증가해왔고 기후재난은 세계 곳곳에서 출렁인다. 지구의 온도에 관한 이야기다. 1.2도 상승한 것만으로도 산불과 가뭄과 홍수가 이상하리만치 잦은 빈도와 거센 강도로 발생했고 기후 난민들이 생겨났고 어떤 종들은 사라지고 있다. COP26에 주목하는 이유는 올해 세계 정상들이 모여 탄소배출량을 얼마나 줄일 것인지 약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각국이 2030년까지의 감축 계획을 내놓는다.

다가올 세상 만드는 COP26서
‘1.5도’ 지킬지 낙관할 수 없기에
세계 시민은 불복종 운동을 한다
우리의 선택으로 세상을 만들 때
우리 서로 도왔다고 말하기 위해

멸종반란한국은 COP26을 두고 ‘6년 전 파리협정 이후 가장 중요한 회의’라고 설명했다. COP26이 성공적일지, 과연 1.5도를 지킬 수 있을지에 관해 멸종반란한국은 낙관하지 않는다. 각국 지배자들의 위기의식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가 미약한 감축목표조차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계 역시 현재의 배출 수준이 지속되면 2040년 이전에 1.5도 상승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국제적 합의가 이전처럼 미약한 수준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하며, 다양한 국적의 멸종반란 시민들이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11월6일 영국,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거리에 모여 시위를 전개할 예정이다. 온라인에서도 동시 진행한다. 비폭력시민불복종을 전제로 나라마다 창의적인 운동을 펼치는데 한국의 경우 지구생태학살자를 선정하고 모욕적인 상을 주는 ‘지구먹방시상식’을 연다고 한다. 탁상 위에서 세상의 미래를 쥐락펴락하는 결정권자들에게 절실한 심정으로 보내는 경고이자 도움 요청이다. 나에게 이 일은 우리 부디 서로를 돕자고 강경히 설득하는 움직임으로 느껴진다.

창작집단 이동시(이야기와 동물과 시) 역시 기후위기를 다루는 창작물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이동시는 ‘기후위기의 가짜해법들’에 관해 주목한다. 이동시가 주요하게 꼽는 가짜해법들은 다음과 같다. 산림파괴청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법한 산림청의 벌목 사업, 자연기반 해법이라고 불리지만 실은 탄소중립으로 위장된 자연착취 해법, 한국 산림청이 캄보디아 현지에서 벌이는 레드플러스 사업, 그 밖의 온갖 그린워싱 등…. 대부분의 시민들이 자신의 삶을 살기에도 분주하여 충분히 들여다보기 어려운 정보들에 대해 이동시는 취재하고 전달한다. 이 자료는 이동시가 발행하는 ‘저항통신’의 글들과 유튜브 채널에서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다.

모두 추출주의(extractivism)에 기반하여 되풀이되는 악습들이다. 기후정의 활동가 김선철의 해석에 따르면 “지구와의 비호혜적인 관계, 온전히 취하는 관계”가 추출주의다. 나무와 화석연료를 비롯한 지구의 자원을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용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추출주의는 위계주의와도 연결되어 있다. 결국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는 권력에 관한 문제의식이다.

결정권을 가진 자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보아야 한다. 실현 가능성 적은 탄소중립 계획안을 내놓은 수장들과, 날씨를 두려워할 줄 모르는 예비 수장들의 움직임에서 불길함을 감지해야 한다. 감지하고 지켜보는 이들이 많아지면 아주 함부로는 결정할 수 없게 된다. 누구 혹은 무엇을 더 돕겠다는 우리의 선택과 함께 세상이 만들어지는 중이다.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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