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과 탈진실 시대의 대선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선거는 시대를 반영한다. 정치사회학을 오랫동안 공부하며 내가 발견한 경험적 진리다. 어떤 선거라도 그 선거가 놓인 시대적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 치러진 대선들도 그렇다. 2002년 대선은 당시 절정을 구가했던 민주화 시대로부터, 2007년 대선은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던 신자유주의 시대로부터, 2012년 대선은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포스트신자유주의 시대로부터 작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2017년 대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대선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상징하는 앙시앵레짐의 붕괴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이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김호기 연세대 교수·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펠로

선거와 시대의 관계를 주목하는 까닭은 내년 3월9일 치러질 대통령선거에 있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시시한 대선은 1987년 민주화시대가 열린 이후 처음이라고 말한다. 호감을 품게 하는 후보를 고르는 선거가 아니라 비호감을 안겨주는 후보를 피하는 선거라는 개탄도 작지 않게 들린다. 미래 비전과 정책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펼친다기보다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에 의구심을 품게 하는 거친 막말과 황당한 행동의 경연장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러한 대선의 풍경 역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두 가지를 주목하고 싶다.

첫 번째, 포퓰리즘의 시대. 지구적 차원에서 2010년대 이후 정치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온 것은 포퓰리즘의 분출이다. 21세기 포퓰리즘은 20세기의 인기영합적 포퓰리즘과 적잖이 다르다. 정치학자 얀-베르너 뮐러는 21세기 포퓰리즘의 기본 성격을 반엘리트주의와 반다원주의에서 찾았다. 기득권을 공격하는 게 반엘리트주의라면, 다른 세력과의 공존을 거부하는 게 반다원주의다. 반엘리트주의는 다시 정당정치에 대한 혐오로, 반다원주의는 상대 정치세력의 악마화로 나타난다. 여기에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포퓰리스트 리더와 지지자들 간의 직접 소통을 가능케 한 직거래주의가 결합돼 있는 게 21세기 포퓰리즘의 주요 특징을 이루고 있다.

미국 트럼프주의는 이런 21세기 포퓰리즘의 대표 사례다. 지난해 치러진 미국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 대 조 바이든 후보가 경쟁했다기보다 ‘트럼프주의 대 반트럼프주의’가 일대 격돌한 선거였다. 최근 우리 대선 과정 역시 이런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서로를 오래된 기득권세력 또는 새로운 기득권세력이라 공격하고, 상대방과의 공존을 처음부터 거부하며, 자신의 지지그룹에만 메시지를 타전하는 직거래주의가 현재 관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특징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 아래에선 인물의 개별 경쟁력은 부차적 사항이 되고, 미래의 권력자원을 놓고 진영 간의 대립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포스트트루스(탈진실)의 시대. 지구적 차원에서 2010년대 이후 시민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온 것은 탈진실의 도래다.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신념에 호소하는 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탈진실 시대에는 정서와 신념이 진리와 도덕의 자리를 대신한다.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이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 결과 공론장과 시민사회에선 정서와 신념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사회적 부족주의’, 즉 다원화된 집단주의가 한층 강화된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21세기 정보사회가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모두 증진시키는 다원화된 집단주의의 속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취향과 문화의 영역에선 자기만의 개성의 성채를 구축하는 동시에 정치와 사회의 영역에선 공통된 정서와 신념의 인정 욕망을 거침없이 표출한다. 포퓰리즘에 내재한 반엘리트주의·반다원주의·직거래주의는 탈진실의 다원화된 집단주의와 결합해 다시 한번 힘을 얻고, 그 결과 정치사회는 공통의 정서와 신념으로 무장한 진영들이 벌이는 권력 쟁취를 위한 무자비한 전쟁터로 전환된다. 특히 대통령제를 취하는 미국과 한국의 경우 대선은 정권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의 프레임이 저 홀로 압도적 영향을 발휘하게 된다.

나는 포퓰리즘보다 민주주의, 탈진실보다 진실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선거와 시대의 관계를 탐구하려는 데 있다. 다시 한번 말하면, 이번 대선은 시시한 대선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포퓰리즘과 탈진실 시대에 치러지는 첫 번째 대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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