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지구가 사라진다

우리는 모두 지금 지구가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로 보내는 메시지 ‘기후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지구라는 우리 모두의 집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집은 다시 지을 수 없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리는 지금이 우리가 하나 되어 인간과 지구를 위한 미래를 약속할 시간이다.

누군가 나에게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하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을 해주곤 한다. “당신이 겪은 지난여름이 아마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시원했던 여름으로 기억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과학적 근거들에 의하면 그렇다. 그래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렇게 대답한다.

올해로 기후변화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딱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학생에서 교수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느껴지는 지난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사실 하나는 기후가 정말 변했다는 것이다. 2021년 현재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은 사실로 드러났다. 평균기온은 상승했고, 빙하는 녹아내리고, 폭염의 강도는 심해졌으며, 홍수·가뭄은 재난 수준으로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지금 우리가 맞이한 2021년의 기후는 과거 최악의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이용해서 예측했던 2021년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걱정이다. 얼마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에서 발표한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다가오는 20년은 과거 20년보다 더욱 심각한 기후변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보면 적어도 나는 우리가 맞이할 미래 예측 결과가 틀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기후위기가 맞다. 인간과 지구 모두의 위기다.

지구의 역사를 거슬러 살펴보면 기후변화는 지구 자전축 변화, 태양 활동의 변화, 화산활동 등 인간 활동과 관련없는 자연적 요인에 의하여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이러한 자연적 요인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적어도 지난 100년간 겪은 기후변화는 인간에 의한 온실가스 증가, 토지 이용의 변화,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반응하는 지구시스템 내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 등에 의하여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대기 중 온실가스의 증가이다. 특히 여러 온실가스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이산화탄소의 농도 증가가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의 지속적인 증가는 온난화를 유발하고 폭염 및 가뭄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극지 빙하를 녹이고 녹은 빙하는 바다에서 구름으로 옮겨가 비가 되어 어딘가에 폭우를 내릴 수 있다. 즉 이산화탄소 증가는 단순히 공기를 데우는 온실효과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구시스템의 불균형을 유발하여 지구 곳곳에 이상기후 또는 악기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 점점 진해져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왜 증가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간단하게는 인간에 의한 화석연료 연소 양이 늘어난 것 때문이고 복잡한 면은 지구시스템의 다양한 요소들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 사용하는 막대한 에너지는 대부분 석탄·석유와 같은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연료의 연소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약 31%는 육상생태계, 23% 정도는 해양이 흡수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약 100t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방출하면 약 54t은 산림의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거나 해양이 흡수하여 없애 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하는 46t은 더는 갈 곳이 없어 공기 중에 남아 차곡차곡 쌓인다. 보통 이산화탄소는 한번 배출되면 최대 200년까지 머무르기에 오래된 탄소가 공기 중에 남아 있어 새롭게 배출한 것들에 의해 농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마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을 추가하면 할수록 커피의 농도가 점점 진해지듯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점점 진해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구의 기후를 바꾸고 있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 변화는 인간과 지구의 교감에 의한 결과이다. 일정 부분의 탄소는 지구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지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면 더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탄소중립이다. 이론적으로는 탄소중립이 이렇게 간단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지구가 흡수해 줄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약 2배 가까운 양을 배출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버려진 땅에 나무를 심어 흡수량을 늘리거나 획기적인 과학기술로 새로운 탄소흡수원을 확보하거나 또는 인위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현재의 반으로 과감히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모든 국가 또는 개인이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기에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복잡하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탄소배출량을 줄여야 하는지 논할 때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 지구의 산림이 또는 바다가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할지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배출량을 줄여야 하는지 양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결국, 탄소수지의 균형을 맞춰 배출과 흡수가 같은 상태가 되어야 탄소중립이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지구 자연생태계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늘어난다면 우리가 줄여야 할 인위적 배출량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지구 자연생태계의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진다면 우리는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배출량을 더 많이 빠르게 줄여 나가야 한다.

하나의 탄소 얘기해야 지구 지켜

결국,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을 위해 우리는 지구와 함께 가는 길을 택해야 한다. 지구가 우리에게 허락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딱 그만큼 또는 그보다 작게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 생태계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최근 들어 빈번해진 산불은 오히려 생태계의 흡수량을 줄이고, 타버린 산림은 더는 흡수원이 아닌 배출원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작년에 일어난 호주 산불이나 올해 발생한 캘리포니아 산불은 대표적인 기후변화의 산물이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온난화가 일어나는 북반구 고위도로 가면 생태계의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얼어 있던 땅은 녹아 풀들이 자라는 땅으로 바뀌고 있으며 산림의 북방한계선은 북상하는 중이다. 하얀 얼음의 땅이 푸른 초원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온난화로 인해 풀들이 자라고 무성해져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면 땅속에 묻혀 있던 탄소 기반 유기물의 분해가 일어나 수백년 동안 묻혀 있던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빠져나온다. 마치 우리가 땅속의 석유를 끌어내어 연소과정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듯이 온난화는 얼어 있던 땅속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푸른 초원은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탄소를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공장이 되어 버릴 수 있다.

물론 앞으로 지구시스템의 변화가 어떨지 좀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으로 예측해야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지구의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지금 지구가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로 보내는 메시지 ‘기후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지구라는 우리 모두의 집을 잃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집은 다시 지을 수 없다. 한 가지 희망은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모두가 마치 다른 탄소를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탄소는 탄소순환이라는 큰 틀 안에서 움직인다. 반드시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모두가 하나의 탄소를 얘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각자의 탄소가 아닌 하나의 탄소를 얘기할 때 우리 집 지구를 잃어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영국에서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고 있다. 바로 지금이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인간과 지구를 위한 미래를 약속할 시간이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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