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의 詩편지](51) 뒷모습 보기

누군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일은
내 마음을 조금 더 아름답고
겸손하게 해줍니다
이름을 불러도
금방 달아나는 고운 새의 뒷모습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춤을 추며 떠나는 하얀 나비의 뒷모습
바닷가에 나갔다가 지는 해가 아름다워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는
어느 시인의 뒷모습
복도를 조심조심 걸어가거나
성당에 앉아 기도하는 수녀들의 뒷모습
세상을 떠나기 전
어느 날 내 꿈 속에 나타나
훌훌히 빈 손으로
수도원 대문 밖을 향해 떠나시던
내 어머니의 뒷모습
어느 빈소에서
사랑하는 이의 영정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흐느끼는 가족들의 뒷모습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왜 조금 더 슬퍼보이는 걸까
왜 자꾸 수평선을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걸까
언젠가는 세상 소임 마치고
떠나갈 나의 뒷모습도 미리 생각하면서!

- 신작시

조용히 가을비가 내리는 오늘 미셸 투르니에의 글에 에두아르 부바의 사진이 함께 있는 <뒷모습>이라는 사진집을 들여다보다가 제가 전에 쓴 시 ‘뒷모습 보기’를 다시 읽어봅니다.

이해인 수녀

이해인 수녀

어느새 노랗게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이 여기저기서 작별을 고하며 떨어지기 시작하는 11월의 오후, 나이들수록 가는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는 말을 새삼 더 실감하게 됩니다.

가톨릭전례력에서 11월은 ‘위령성월’이라 하여 특별히 죽음을 묵상하는 달이라서 친지들의 묘지도 평소보다 자주 방문하며 기도를 바치는 때입니다. 그래서 저도 친구수녀랑 수녀원 묘소에 올라가 먼저 떠난 40여명의 수녀님들 위한 연도를 바치며 죽음에 대한 묵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하고 가신 이들과의 대화도 나누려고 합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당신과 함께 나도 죽었다> <애도예찬> <애도의 문장들>이란 제목의 책들을 가까이 두고 보는 요즘, 사무실 책상 위에 촛불을 밝혀두고 최근에 별세한 이들의 책과 사진 그리고 편지들을 펼쳐둔 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봉헌하곤 합니다. 아직 잊지 않고 기억해주어 고맙다고 사진 속에서 미소짓는 이들은 가끔 저의 꿈 속에도 나타나 함께했던 시간들의 추억 한 조각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 언니, 오빠, 그리고 다정했던 친구와 이웃을 향한 그리움이 너무도 사무칠 때면 ‘그 나라 주인에게 허락을 구하고 단 하루라도 잠시 이쪽으로 휴가를 다녀갈 순 없을까요?’ ‘아니면 꿈에라도 자주 발현을 하시든가?’ 하고 어리석은 혼잣말을 해보곤 합니다. 제가 가만히 사라지는 시간의 뒷모습을 향해 말을 걸면 그는 ‘글쎄요? 그저 순간순간을 새롭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세요’ ‘사랑할 시간이 생각보단 길지 않으니 더 많이 사랑하고 용서를 미루지 마세요’라고 충고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어떤 일로 구치소에 들어간 한 자매의 편지를 받은 오늘. “우리집 거실에 앉아 G선상의 아리아를 감상하던 시간이 먼 옛날 같네요. 수녀님이 쓰신 글 중에 ‘몸의 아픔은 나를 겸손으로 길들이고 맘의 아픔은 나를 고독으로 초대하였지’라는 글을 자꾸만 되뇌어봅니다.” 죄를 지은 부끄러움에 벽 쪽으로 돌아앉아 성서를 읽거나 묵주를 손에 든 그녀의 쓸쓸한 뒷모습, 살아서도 이미 죽음을 체험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아프고 슬픈 뒷모습에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노을빛 11월! 7개월 만에 가벼운 흰 수도복에서 무겁고 엄숙한 검은 빛의 수도복으로 갈아입고 더 깊이 기도할 채비를 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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