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노력의 결과가 왜 군비경쟁일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임기 내내 한반도 평화를 강조했으되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결과물은 결국 ‘군비경쟁’으로 남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관계 진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 평화 정착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문재인 정부였기에 이 같은 결말은 잘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사회에 비친 한반도의 현실이 그렇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이 초음속 순항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하고 북한도 이에 뒤질세라 SLBM을 발사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외신들은 ‘한반도 군비경쟁 시대’를 언급했다. 지난달 19일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 발사에 대해서도 세계는 남북 간 군비경쟁에 미칠 영향과 북한의 반응에 주목했다. 남북 최고지도자들의 최근 언급도 군사력 증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위력을 위해 강한 국방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고, 문 대통령 역시 ‘힘을 통한 평화’를 말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3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2번의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했다. 정부도 지금 같은 역설적 상황 전개가 당혹스러울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전히 종전선언과 교황 방북, 남북 산림협력, 인도적 지원 등 2018년 대화 국면에서 추진했던 사업들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재의 남북관계 상황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임이 분명해 보인다.

원인을 찾는다면, 먼저 문재인 정부의 안보 구상이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지적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안보정책은 ‘한반도 평화’와 ‘자주국방’이라는 2개 축으로 이뤄져 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를 정착시켜 남북 교류 및 북방 진출로 새로운 국가성장동력을 창출한다는 것이 첫번째 목표다.

자주국방을 통해 ‘미국에 국방을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안보 환경’을 만드는 것도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목표였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좌우하는 환경 속에서는 남북관계와 외교 모두 결정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보를 표방한 정부로서 당연한 정책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첫번째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를 용인하는 대신 핵추진 잠수함과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얻어내려 한 것도 자주국방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전시작전권 조기 환수, 중기국방계획에 따른 국방비 증대, 경항모 건조, 미사일 발사용 고체연료 기술 확보 등에 집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재래식 군비를 아무리 늘려도 이런 방식으로는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북한의 핵 때문이다. 북핵에 대응하는 수단은 핵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는 한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에 의존해야만 하는 문제다. 북한의 핵보유는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지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북핵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한반도 안보 수요를 초과하는 과도한 군비의 증강에 매달리지 않고 북핵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남북 모두 군비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했다면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다른 하나의 목표와 부합하는 정책이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북한 핵개발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는 하나, 남북 간 군사력 격차를 메우기 위한 북한의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는 한국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평화를 통한 비핵’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접근법은 북핵 문제를 남북관계에서 떼어내 미국에 맡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남북관계와 평화 정착은 한국이 설 공간이 별로 없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종속물이 됐다. 순항하는 듯하던 남북관계가 북·미 협상 결렬과 동시에 얼어붙은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해 미국이 드리운 안보의 그늘에 영원히 안주하는 것도, 남북 동반 핵무장으로 ‘핵전쟁의 공포와 공존하는 평화’ 속에 살아가는 것도 한국이 목표로 하는 진정한 한반도 평화는 아니다. 북한이 핵을 가진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남북관계도, 항구적인 평화도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북·미 간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다뤄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차기 정부에 교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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