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방지턱이 필요한 ‘청년의 흉터들’읽음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평등을 일상으로. 2021년 여성가족부 성평등 포럼 문구다. ‘미래 여는 새로운 성평등 세상’을 모토로 청년의 일과 삶이 토론 주제였다. 젠더, 세대, 연령의 노동시장 불평등이 확인되는 자리였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젠더 기반 불평등이 소득, 고용의 질, 정신건강 문제에서 심각했다. 사회적 지원 부족 지수도 OECD(8.6)의 두 배(19.2)가량 차이가 났다. 어려운 시기에 의지할 수 있는 친구나 친척이 없는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 때문일까. 주위 청년 활동가를 통해 접한 현실은 암울하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고 너무 괴로워 출구를 찾고 있다”거나 “정신 스트레스와 고통받는 주변인이 떠올라 더 울컥했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접할 땐 마음 한구석이 착잡했다. 코로나19는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 집단에 더 많은 충격을 준 것 같다. 일자리를 상실한 20대 초반 여성 청년의 우울감이나 정신건강이 위험한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저소득 청년이나 교육훈련을 받지 못한 청년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다. 노동시장에서 일 경험은 매우 중요하지만 오랜 기간 일자리를 갖지 못할 경우 정신건강이나 사회적 관계의 단절 등 흉터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15년 전과 비교하여 청년의 삶은 어떨까. 여성 청년의 경제활동인구나 고용률은 증가했다. 그러나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 일자리는 저임금에 불안정한 곳들이 많다. 특히 20대 초기 여성 비정규직 증가 추이를 유의해서 봐야 한다. 청년 노동시장 내에서 여성의 장기 실업(2만5000명)과 비구직 니트(20만7000명) 증가가 두드러진다. ‘그냥 쉬었다’는 비경제활동인구의 여성청년이 25만5000명으로 지난 15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학교를 떠난 이후 노동시장으로의 이행 차질은 소득 감소와 불안정 고용상태로 귀착될 수 있다.

불평등한 노동시장의 현실은 20대와 30대 청년기 전반에서도 확인된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갈수록 성별 임금 격차는 더 벌어진다.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비정규직인데도 말이다. 20·30대 남성 비정규직이 100일 때 20대 여성은 86.3이었고, 30대 여성은 87이었다. 그런데 프리랜서와 플랫폼노동에서도 성별 임금격차가 확인된다. 20대·30대 남성 플랫폼노동자가 100일 때 여성은 모두 70.6에 불과했다. 기존의 직종분리 현상과 격차가 청년층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플랫폼노동자의 56.8%가 청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간과할 문제는 아니다. OECD 회원국의 평균(12.9)보다 3배 가까운 성별 임금격차(34.6)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맞게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청년실업과 고용의 ‘취업’ 문제로 접근하면 문제의 본질을 포착할 수 없다. 성평등한 노동과 청년 그리고 여성의 교차된 시각에서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코로나19의 상처에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마음건강 지원이 필요하다. 20·30 여성의 우울증과 자살률은 심각한 상황이다. 고위험군 개입뿐만 아니라 저위험군과 단순 우울군까지. 청년들이 고위험으로 질주하지 않도록 과속방지턱이 필요하다. 이런 현실을 뒤로한 채 “ESG시대에 청년으로 어떻게 살지, 스스로 답을 찾으시오, 청년 정신으로!!”가 맞는 이야기일까.

평등을 향한 기나긴 여정에 청년의 삶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활력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하고, 청년 스스로 개개인의 삶과 역량 형성이 가능하도록 두꺼운 지원을 해야 한다.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현행 대기업 고용형태공시제에 플랫폼 노동시장까지 결합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무수히 많은 청년에게 교육기회를 박탈하고 그들을 돈이 되지 않는 일자리 및 빈곤에 가두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실천적 운동과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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