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으로 푼 ‘오징어 게임’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10월 말 핼러윈을 맞아 작품에 등장한 의상이 핼러윈 복장으로 전 세계에서 주문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드라마의 인기 비결은 코로나19 이후 더 극명해진 지구적 양극화를 데스게임(목숨을 담보로 한 게임)을 통해 긴장감 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특히 계급 간의 격차를 다양한 상징을 이용해 뚜렷하게 부각시켰다. 의상이 압권이었다. 게임을 즐기는 VIP의 번쩍거리는 가면·실크옷과 총을 든 진행요원의 핑크색 옷은 참가자들의 초라한 초록색 추리닝과 대비된다.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를 연상케 하는 진행요원의 보스인 프런트맨은 마스크도 옷도 모두 검은색이다.

음식도 옷만큼 대비됐다.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을 비롯해 참가자들이 먹는 음식은 빵, 삶은 계란, 옥수수, 감자가 고작이다. 목숨을 건 게임 참가자들의 음식인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초라하다. 그나마 맨 처음 준 계란프라이를 얹은 도시락이 가장 괜찮은 음식이었다. 음식이 비약적으로 바뀌는 건 참가자들이 모두 죽고 단 3명이 남았을 때였다. 그때 이들에게는 스테이크와 와인이 제공된다. 턱시도와 함께.

지배층의 음식은 게임 참가자와 완전히 달랐다. 외국인 일색인 VIP의 음식은 오로지 술에 집중됐다. 이들이 마시는 술은 양주나 와인, 샴페인이다. 안주 따위는 먹지 않는다. 끼니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은 계란 하나를 놓고 다투는 게임 참가자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다. 절대 권력처럼 보이지만 실체 없는 유령처럼 보이기도 한다.

밥은 안 먹고 술만 들이켜는 이들은 투기적 자산 거래에 열을 올리는 글로벌 투기자본을 연상케 한다. 이미 1980년대부터 세계 자본의 95%는 곡물·석유 같은 실물을 팔고 사는 상업 거래가 아니라 투기적 자산 거래에 쏠려 있었다. 이런 추정이 가능한 것은 오징어 게임의 설계자이자 호스트이기도 한 오일남(오영수)이 자신을 ‘돈을 굴리는 사람’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돈 좀 굴려본’ 오일남의 음식은 드라마에서 가장 독특했다. 자본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성기훈과 함께 비오는 밤에 편의점에서 소주와 생라면을 먹는가 하면, 게임에서 뒹굴며 참가자들과 옥수수·감자를 함께 먹었다. 심지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성기훈이 따라준 물 한잔이었다. VIP가 즐겨 먹던 양주와는 차원이 달랐다. 누리꾼들이 그를 ‘현인’으로 부르는 까닭이다.

이처럼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음식은 시종일관 불편하다. 감독은 누구에게 제대로 된 식탁을 내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물론 VIP, 프런트맨, 게임의 창조자마저도 비정상적인 식사를 한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인 기훈의 딸과 먹은 음식도 떡볶이가 전부였다.

감독은 “성실한 사람이라도 한순간 삐끗하면 끔찍한 채무자가 될 수 있는 비정한 현실에서 따뜻한 밥상은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쌍문동이 낳은 수재 218번 조상우(박해수)가 죽기 전에 한 말이 힌트 같다. “어릴 때 (저녁까지) 놀다보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렀는데 이젠 아무도 안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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