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수영일까

조운찬 논설위원

지난주 김수영기념사업회가 출범했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행사였지만, 올해 100년이 되는 문학인이 어디 김수영 혼자일까. 시인 김종삼, 조병화, 박태진도 있고 소설가 이병주, 장용학, 유주현, 김광식도 있다. 각기 기리는 행사들이 열리겠지만 김수영의 기념은 남다르다. 김수영이기 때문이다. 김수영 문학상·청소년문학상이 제정됐고, 문학관도 설립됐으며, 연구모임도 하나둘이 아니다. 오는 27일 탄생 100돌을 전후해 강연, 전시회, 학술대회도 열린다. 김수영 기념은 이제껏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조운찬 논설위원

조운찬 논설위원

시인 김수영은 생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9) 한 권을 냈을 뿐이다. 사후에는 출간이 줄을 이었다. 작품은 시 180여편, 산문 100여편, 단편소설 1편이 전부인데, 몇 년을 간격으로 시선집, 산문선집, 전집 등이 나왔다. <김수영전집>만 해도 1981년 처음 선보인 뒤 개정판(2003), 육필시고 전집(2009), 정본 김수영 전집(2018)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김수영 관련 석·박사 논문만 330여 편에 달하는데,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에 별도의 논문실을 마련했을 정도다.

왜 김수영일까. 유종호 교수는 ‘시세계의 현란스러운 다채로움’을 꼽는다. 흔히 한 시인의 세계를 ‘이별의 정한’(김소월), ‘전통 미감’(서정주), ‘북방 정서’(백석) 등처럼 단일 주제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수영만은 하나로 포괄할 수 없다. ‘자유와 사랑’을 꼽는 이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김수영에게는 순수시, 참여시, 모더니즘과 같은 장르 구분이 허용되지 않는다. 시 한 편 한 편이 하나의 세계이자 우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수영 시는 탐사하듯 읽어야 한다.

문제는 시가 어렵다는 점이다. 김수영이 ‘난해시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난해시처럼 꾸며 쓰는 시가 나쁘다’고 쓴 걸 보면, 스스로도 인정한 것 같다. 대신 그는 자신의 말대로 꾸미지 않고 정직하게 썼다. 시 소재는 대부분이 일상이다. 거미, 이, 하루살이, 풍뎅이, 토끼와 같은 생명체도 있고, 병풍, 서책, 지구의, 자(針尺), 사진, 영사판, 향로 등 물건도 등장한다. 집에 든 도둑, 부부싸움, 양계일, 채소밭, 국립도서관, 육법전서와 혁명 등 삶의 서사도 시로 다뤘다. 통속적인 소재이지만, 시는 통속적이지 않다. 그는 ‘확대경을 쓰고 생활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일기장에 적었다. 그리고 거꾸로 보고, 비틀어 보며 시를 썼다.

스승도 제자도 없었던 김수영은 시를 쓰면서도 시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시라는 통념에 길들여져온 독자는 그런 도발적이고 반역적인, 심지어 반시적(反詩的) 태도에 당황한다. 시의 압축미를 좇는 독자는 30~40행에 달하는 김수영의 장시를 읽어갈 때 길을 잃기 쉽다. 그래도 김수영의 기발한 착상, 비유, 역설은 독자를 끌어당긴다. 독자들은 권력 저항은 언감생심, 일상 속 옹졸한 반항밖에 못하며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개탄하는 김수영에게서 자신을 본다. 산업화에 따른 마구잡이식 도시화를 두고 ‘도야지우리의 밥찌기 같은 서울’이라고 일갈한 대목에서는 무릎을 친다.

앞서 나는 몇 차례 김수영 시집을 들었지만, 번번이 덮곤 했다. 100주년에는 제대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해설집을 참조하고 평론집을 뒤적였다. 시와 함께 ‘시작 노우트’ 같은 관련 산문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니 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치열하게 시대를 살았던 리얼리스트였다. 일제강점 때에는 쫓겨나듯 만주로 떠나야 했고, 6·25 때는 민간인으로 포로가 되었다. 4·19 직후 자유에 대한 열광과 5·16 이후의 좌절은 그의 시를 견고하게 만들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간’ 그의 시에는 우리의 근현대가 박혀 있다. 시인은 육성으로 말한다. “팽이처럼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살아가라.”(‘달나라의 장난’)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라.”(‘풀’) “살아있는 눈(雪)을 바라보며 마음놓고 기침을 하라.”(‘눈’)

아쉬움은 있다. 사후 50년이 지났지만, 김수영은 여전히 ‘지식인 시인’에 머물러 있다. 서울 광화문 대형서점에서 그의 시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독자층이 그만큼 얇다는 뜻이다. 그간 수많은 연구와 비평은 ‘김수영 신화’만 만들고, 독자들을 더욱 유리시키지 않았는지 돌아볼 때다. 일반 대중이 김수영을 만나야 한다. 김수영기념사업회는 ‘김수영마을’ 조성 등을 통해 독자가 쉽게 김수영 문학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수영이 김소월, 윤동주와 같은 ‘국민시인’이 될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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