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 목사·시인
[임의진의 시골편지] 누나 이름

태어나기 전에 태명 배냇이름을 짓곤 하지만, 낳고 나서 하는 짓을 보아 보통 이름을 지었다. 할아버지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 작명가가 짓고, 용한 점쟁이나 스님을 찾아가 짓기도 해. 요셉이나 요한으로 짓는 건 기독교에 푹 빠진 부모의 신앙 전성기. 아이가 순하면 순 자를 넣기도 하고, 안 순하고 까탈스러우면 순하게 살라면서 순 자를 넣어 이름을 짓기도 했다. 내 누님 중에 ‘은자, 안자, 경자’까지 있는데, 아버지가 다음으로 ‘순자’라 지을까 하다가 아들이 태어나는 바람에 순자 누나는 세상에 없게 되었다.

다만 쿠데타와 광주 시민 학살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장군의 부인 이름이 땡땡. 누나를 미워하는 죄를 짓지 않도록 배려해주신 하늘에 감사했어. 부부는 일심동체라던가. 장군이 떠난 뒤라도 부인이나마 광주 시민들에게 참회 사죄하길 바랄 따름이다.

눈이 한바탕 내린 산허리. 쌀쌀한 밤바람에 오금이 저릴 지경. 간만에 큰누나에게 전화를 드려 이름 한번 불러봤다. 자전거 타다 넘어져 뼈가 부러졌다네. 아이고매~ 자전거는 무사한지 물어볼 걸 그랬네. 객지에 나가 있는 조카들 얘길 조르라니. 길에서 만나도 모르고 지나칠 혈육들이 많다. 마스크 집어쓴 세상이다 보니 더더욱 사람 얼굴을 몰라보겠다.

아이들 수능이 끝났어도 학교엘 가더군. 아이들이 학교엘 가는 이유는? 학교가 집에 올 수 없기 때문, 으흑~. 아이들 교복엔 이름표 자리가 따로 있는데, 학교에선 이름표를 꺼내놓고 생활하겠지. 나도 대문에다 이름표를 내걸었다. 이름 따라서 우편물도 배달되고, 누이표 김장김치, 석화 굴젓, 내가 좋아하는 파래김도 가끔 온다. 우편물이 오면 누가 보냈는지 이름부터 살피게 된다. 내 이름을 꾹꾹 눌러썼을 손길을 생각한다. 낳아주신 부모와 제 이름을 욕되지 않게 살아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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