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

부희령 작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로 고등학생들과 고전 읽기 특강 수업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대상으로 수업을 할 자격도 경험도 부족한 터라 학생들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의문들을 취합해서 미리 건네달라고 부탁했다. 담당 교사가 보내온 질문 목록을 들여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하던 바로 그 질문이 적혀 있었다.

부희령 작가

부희령 작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라다크인들의 전통적 생활방식대로 살 수 있을까?”

지난 세기 말엽에 그 책을 처음 읽었다. 녹색평론사에서 김종철 선생님의 번역으로 출간된 나의 첫 <오래된 미래>는 책장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수업 준비를 위해 개정판을 다시 사야 했다. 은은한 나뭇잎 문양이 박힌 하드커버 책을 받아들고 나는 옅은 서글픔을 느꼈다. 옛 책은 내용과 형식 양쪽 측면에서 상당한 충격을 안겨 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제목이 박힌 표지와 책을 이루고 있는 가벼운 재생용지가 내용과 얼마나 잘 어울렸던지. 나는 그 무렵 만난 많은 이에게 열띤 설명을 늘어놓으며 책을 소개하곤 했다.

‘녹색평론’ 편집실로부터 1년 휴간을 알리는 편지를 받았을 때도 비슷한 서글픔을 느꼈다. ‘녹색평론’은 독립적인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운영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광고수입이나 외부지원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창간사에서 김종철 선생님은 토로한다. “ ‘녹색평론’을 구상한 것은 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유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라고. 커다란 나무 그늘은 사라지고 홀로 사막의 모래알로 던져진 듯한 상실감이 밀려온다.

<오래된 미래>를 읽고 나서, 혹은 ‘거품과 같은 뿌리 없는 산업경제-소비주의문화를 넘어 자급능력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농촌공동체 중심의 지역문화’를 뿌리내리는 게 시급하다는 김종철 선생님의 지론을 대할 때,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아마도 그런 질문은 과거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떠오르는 것일 테다. 물론 과거는 우리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다.

전통적 라다크 사회는 척박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산양식과 불교라는 종교가 두 축을 이루며 오랜 세월 긴밀한 공동체 중심으로 유지된 시스템이다.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보면 현대 산업사회보다 지역 특성에 딱 맞는 현명한 시스템이었다. 라다크의 변화는 사람이 반드시 현명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는 온다. ‘사람의 에너지를 온통 소득과 소비의 경쟁 속에 쏟아붓도록 강요하는’ 현재 세계가 지닌 모순은 기후 문제로든, 팬데믹으로든, 경제위기로든 파국을 부를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운명을 바꿀 결단을 내릴 능력은 없을지라도, 파국을 기다리며 나무를 심을 것인지, 더 많은 쓰레기를 남길 것인지 정도는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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