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을 이야기하자읽음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영생할 줄 알았던 전두환이 사망했다. 생의 기억이 시작되는 1980년대 초부터 그는 텔레비전만 틀면 나오는 ‘땡전뉴스’의 주인공이었고,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사진과 상징물이 넘쳐나 우상숭배의 대상이었으므로 영원히 살 줄 알았다. 전두환은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었다. 아버지는 함께 살던 대학생 사촌 오빠에게 전두환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이니 데모 판에 기웃거리면 큰일 난다며 단속을 했다. 전두환은 숭배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많은 이들이 이 욕된 죽음에 한마디씩 보태는 중에, 직접 폭력을 당한 이들은 전두환의 죽음에 더욱 허탈하고 분노가 치밀 것이다. 국민학생 때 전두환을 겪어놓고 시류에 한마디 보태는 일이나 고작 열 살 즈음의 어린애가 느낀 압박도 군사독재 아우라였음을 깨닫고는 그 죽음이 더욱 밉다.

전두환 사망 후 내 또래들이 외친 한마디, ‘내 오백 원 내놔라!’다. 1986년 난데없이 북괴가 우리나라를 수몰시키려 한다며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63빌딩이 물에 찰랑찰랑 잠긴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주야장천 틀어댔다. 상습 침수지역에다가 판잣집이 많아 ‘하꼬방’ 동네라 부르던 우리들은 물에 잠겨 죽겠구나 싶어 공포에 시달렸다. 그래서 물에 빠져 죽기 싫어 평화의 댐 건립 성금으로 거금 오백 원을 냈다. 당시 라면 한 개에 백 원 남짓이었으니 우리에겐 큰돈이었다. 동전이 아니라 천원권 지폐를 내면 칭찬을 받았고, 반장들은 아까워하면서도 눈치껏 지폐를 냈다. 때맞춰 대대적인 반공 집회가 열렸는데. 머리띠에 빨간 매직으로 ‘반공’이라 적어갔더니, 담임 교사는 나약해 보인다며 ‘멸공’이라 적으라 하였다. 우리는 멸공 머리띠를 묶고 목이 터지도록 ‘김일성을 죽이자!’ ‘공산당을 쳐부수자!’라 외쳤다. 누군가를 죽이고 부숴버리자 악을 쓰기엔 너무도 어린 열 살이었다.

전두환은 온갖 이유를 붙여 코흘리개들의 호주머니를 털어갔다. 불우이웃돕기 성금과 수재의연금, 군위문품을 뜯어갔다. 사남매가 쌀 한 바가지씩 갖다 내면 감당하기 어렵다며 엄마는 정부미를 사 왔다. 어린 마음에도 우리 집은 ‘일반미’ 먹는데 가난하다고 이렇게 맛없는 정부미를 갖다 내는 것이 면구스러웠다. 잿빛에 가까운 정부미를 낼 때, 잿빛으로 일그러졌던 담인 교사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영세민이었던 내 친구네는 정부미를 먹고살았는데, 다시 이 쌀을 받아든다면 어떤 기분일까 싶어 마음이 내내 걸렸다. 여기에 88 서울 올림픽에 사활을 걸면서 학교는 올림픽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올림픽 가요에 맞춰 매스게임을 했고, 미술 시간에는 올림픽 공식지정 제품인 고무찰흙으로 ‘호돌이’를 만들었다. 쓰다 남은 고무찰흙도 많았건만 지정상품만 쓰라는 지령이 내려와 생돈을 날려야 했다. 그렇게 알뜰하게 우리를, 아니 우리의 부모들을 털어갔다. 개중 몇몇은 두들겨 맞는 체벌을 선택하기도 했다.

농촌의 일가붙이들의 사정도 꼬였다. 1980년대 초반 복합영농으로 권장하던 축산업은 유행처럼 번졌건만 전두환은 15만마리의 소와 78만마리분의 쇠고기를 수입하여 소값 파동이 났다. 보태서 전두환의 동생이자 간신배인 전경환은 1982년 호주에서 ‘샤로레’라는 임신한 소까지 들여왔다. 하나 샤로레는 한국 땅에 적응을 못해 100마리 중 예닐곱 마리는 죽어 나갔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농가 빚으로 남았다. 본격적인 농가부채의 시대가 그렇게 열렸다. 5·18 광주 학살과 형제복지원, 삼청교육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잔인한 국가폭력을 당한 이들의 고통에 비한다면야 그까짓 쌀과 고무찰흙 뜯긴 일은 사소하다. 하지만 용서를 구하지도 않고 떠난 전두환의 기억을 낱낱이 꺼내 말하자. 작은 사람들의 작은 기억과 증언이 봇물로 터져나와 전두환과 그 일당들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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