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이기호의 미니픽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늦은 밤, 정용은 자취방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날은 흐리고 바람은 매서웠다.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 소리는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렸고, 신호등은 더 붉고 더 파랗게 깜빡거렸다. 오늘 밥은 먹었던가? 정용은 어깨를 옹송그린 채 따져 보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라면을 먹은 것도 같은데, 그게 저녁이었는지 점심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허리가 조금 뻐근했고, 종아리는 계속 욱신거렸다. 그런데도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먹을 때마다 자꾸 다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함께 살던 진만이 사고로 죽은 뒤, 정용은 근 보름 넘게 자취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고,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멍한 상태로 생라면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기도 했고, 멀거니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기도 했다. 정용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야, 그래도 뭘 좀 먹어야지.”

대학 동기인 상구가 족발을 사온 적이 있었다. 정용은 그 족발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몇 점 집어먹었다.

“문 앞에 이런 것도 떨어져 있더라.”

상구가 주섬주섬 정용 앞에 내민 것은 각종 고지서들이었다. 도시가스 요금, 전기요금, 휴대전화 요금 등등. 그나마 정용을 다시 자취방 밖으로 나오게 만든 것은 바로 그 고지서들이었다. 거기엔 죽은 진만의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용은 예전에 일했던 편의점에서 다시 일하게 되었다. 한창 손님이 몰릴 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퇴근해서 혼자 자취방으로 걸어갈 땐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뭘 잘 안 먹어서 그런 거야. 정용은 그렇게 원인을 둘러댔지만, 자취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고가도로와 이어진 왕복 8차선 도로를 막 건너려던 참이었다. 흰색 구형 아반떼 한 대가 빠른 속도로 횡단보도 쪽으로 다가왔다. 정용은 멈춰 선 채 가만히 그 차를 지켜보았다. 횡단보도엔 이미 보행 신호가 들어와 있었지만,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차는 고가도로로 진입하려는가 싶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꿨고, 그 바람에 중앙분리대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그대로 멈춰 섰다. 차의 보닛은 마치 땅에 떨어뜨린 케이크처럼 안으로 우그러졌고, 운전석과 조수석에 탄 사람은 정신을 잃을 듯 보였다.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를 어쩌지?

정용은 그 자리에서 계속 움직이지 못했다. 멈춰 선 차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내 그쪽에서 불길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대로 가만둔다면, 누군가 저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금세 더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정용은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와야 한다고, 구해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고 있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진만은 차가운 도로에서 죽었다. 아무도 그를 돕지 못해서 죽었다. 정용의 귀엔 반복해서 그 목소리만 들렸다.

“저기요! 여기 좀 도와주세요!”

사고 차량 앞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서더니, 운전석에서 늙수그레한 기사 한 명이 뛰어나왔다. 그가 정용을 향해 빠르게 손짓을 했다. 정용은 그제서야 마치 잠에서 퍼뜩 깬 사람처럼 그쪽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택시 기사는 자신의 차 트렁크에서 소화기를 꺼내 들었다. 정용에겐 작은 손망치를 건네주었다. 정용은 그 손망치로 뒷좌석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다. 사고 차량 운전석에는 젊은 남자가, 조수석엔 중년 여성이 정신을 잃은 채 앉아 있었다.

정용의 힘이 부족해서인지, 손망치가 너무 작아서인지, 유리창은 잘 깨지지 않았다. 유리창을 깨야 차 문을 열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텐데…. 정용은 이를 꽉 깨물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또 다른 사람들이 사고 차량으로 달려왔다. 지나가던 차들이 멈춰 섰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너나없이 움직인 것이다. 그 사람들이 정용과 함께 유리창을 두들겼다. 정용은 계속 손망치를 휘두르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고 있다는 것을, 진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깨달았다. 그 목소리가 어두운 밤하늘 속으로 멀리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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