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386세대’는 다 어디에?읽음

장면1. 1970년 11월, 만 22세 청년 전태일, 청계천 평화시장 옷 공장의 재단사, 그는 장시간, 저임금, 무권리 노동에 착취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려 ‘바보회’를 만들고 노~력 하던 끝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했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세종환경연합 난개발방지특위 위원장

장면2. 1981년 5월, 서울대 경제학과 4학년 김태훈은 도서관 창밖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많은 학생들이 광주항쟁 1주기 희생자 위령제(침묵시위)를 벌이다 사복형사들에게 끌려가는 걸 봤다. 이에 그는 도서관 6층에서 “전두환 물러가라”를 세 번 외치고 투신했다.

장면3. 2021년 11월, 이른바 ‘386세대’ 출신의 변호사 권경애는 SNS 글에서 “혁명을 논하고, 평등한 세상을 갈망하고, 동지들의 분신을 잊지 말자 언약하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다하자던 언약의 귀착점이, (고작) OOO이냐?”고 했다. 끝이 이상하지만, ‘386세대’의 자아성찰로 읽힌다.

나에게 전태일은 “대학생 친구 하나 있으면 좋겠다”던 말 때문에 늘 가슴에 사무친 형이자 친구다. 나 자신 ‘386세대’의 일인으로, 전태일 같은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반독재 운동에 참여했다. 학자가 돼서는 더불어 행복한 세상의 밑그림을 그리며 학생들에게 노동법도 가르쳤다.

나에게 김태훈은 박종철, 이한열, 강경대 등 반독재 투쟁 속에 장렬히 산화한 투사들처럼, 부끄러움과 책임감의 원천이다. 그간 군사독재는 종식했고, 대통령도 직접 뽑으며, 심지어 ‘386세대’가 나라를 이끈다. 그러나 왠지 부끄럽고 미진하다.

나에게 권경애의 취중진담은 이미 ‘기득권’이 된 ‘중심부 386’에 대한 비판이자, ‘주변부 386’의 객쩍은 냉소주의다. 암 투병 중인 정태인 박사 역시 한 인터뷰에서 “우리가 데모하고 할 때는 진짜 목숨 걸고 했는데, 그것은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랬다. 그런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나빠졌다”며 지식인들이 ‘기득권’화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여기서 이런 물음이 든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고 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들었건만, 왜 여전히 전태일의 ‘근로기준법’은 다수 노동자에게 ‘빛 좋은 개살구’인가? 많은 민주 열사들의 소원처럼 민주화가 됐는데도 어째서 우리 일상은 우울한가? ‘중심부 386’이 각 영역에서 주요 위치에 있음에도 왜 여전히 민주주의는 요원하며, 오히려 불평등이나 신분 세습이 공고화하는가?

나도 뾰족한 수는 없다. 하지만 다수가 동의하는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뤄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첫째, 서울과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몰려 사는, 초양극화 불균형 구조를 바꿔야 한다. 분권화, 자치화가 답이다. 지방을 서울처럼 만들 게 아니라 서울을 지방처럼 만들어야 한다. 각 지방은 직접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인도의 간디가 제안한 ‘70만 개 마을공화국’ 구상을 우리의 읍, 면, 리 단위에 도입해 ‘10만 개 마을공화국’을 만드는 건 어떤가.

둘째, 무한경쟁과 무한이윤의 원리 위에 작동하는 시장경제는 실질적 민주주의는커녕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마비시킨다. ‘탈자본’ 생명연대 사회가 답이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게 아니다. 냉혹한 계산으로 움직이는 경제가 아니라 인간적 필요 충족의 경제가 옳다. 코로나19와 (초)미세먼지, 기후위기, 불평등의 공통된 뿌리는 자본주의에 토대한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폐기 시스템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가 암시하듯, 소박해도 더불어 정겨운 사회를 만들면 좋겠다.

셋째, 국가나 사회구조를 민주화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네 일상도 민주화하자. 예컨대 아이 교육조차 ‘노동력’ 육성 관점이 아니라 ‘인격체’ 성장을 돕는 관점이 필요하다. 임금노동 뒤에 숨어 ‘그림자노동’이 돼버린 가사노동도 모두 분담하자. 매일 8시간 이상 매달리는, 중독성 마약 같은 노동조차 돈벌이가 아니라 살림살이 기준으로 바꾸자. 노동시간 단축과 더불어 늘어난 여가를 쇼핑이나 소비보다 독서나 토론, 문예나 강연 등 사회의식을 고양하며 즐기자.

근본 해법을 외면할 때 끝내 ‘파국’이 온다. 돈과 권력, 편리만 아는 자본 독재, 물신주의 세상에서 아직도 ‘바보 같은’ 소리냐며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나는 내 길을 간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전태일이 내 안에 살아 있으니까. 그래서 묻는다. 그 많던 ‘386세대’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나? 오늘따라 전두환·노태우 독재 때, 최루탄 가스를 함께 마셨던 친구들이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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