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잉크

신예슬 음악평론가

첫 책의 원고를 마무리했을 무렵, 해방감과 동시에 막막함이 찾아왔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떤 힘으로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이걸 왜 썼는지를 생각해봤다. 자아실현? 생계유지? 자기 수련? 빤한 이유들이 있었지만 모두 자기만족적인 것들이었다. 나 하나를 만족시키자고 이렇게 노력했다니. 이럴 바엔 차라리 다른 데서 만족을 찾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왜 예술에 대해 쓰나. 욕심이 아닌 자그마한 당위가 필요했다. 예술에 대한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확신을 찾고 싶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신예슬 음악평론가

그즈음 나는 뉴욕에 머무르고 있었고, 탈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토니 모리슨의 부고를 들었다. 그는 ‘가장 푸른 눈’ ‘솔로몬의 노래’ ‘빌러비드’ ‘재즈’ 등을 쓴 작가이자 편집자였다. 뉴욕 곳곳에선 그를 추모하는 움직임들이 생겨났고, 라디오에서도 그가 남긴 이야기를 다시 전했고, 책방들은 모리슨만을 위한 서가를 마련했다. 그중 한 서점에서는 모리슨이 남긴 말 중 일부를 발췌해 창문가에 놓아뒀다. 199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중 일부였다. 그 앞에 서서 그 글을 한참 읽었다. 당시엔 맥락도 모른 채 마냥 읽었지만 그 글은 내게 오랫동안 남아 예술에 대해 쓰는 일에 대한 작은 믿음의 씨앗이 됐다.

“이야기를 꾸며내세요. 서사는 급진적입니다. 창조되는 그 순간 우리를 창조합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해 손을 뻗어도 탓하지 않을게요. 당신의 말이 사랑에 불붙어 불길에 사그라진 재만 남는다고 해도, 말 없는 외과의사의 손처럼 당신의 말이 피가 흐르는 곳만 봉합한다고 해도 탓하지 않을게요. 결코 제대로, 일거에 할 수 없다는 걸 우리도 압니다. 열정은 결코 충분치 않습니다. 실력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시도해보세요. (…) 무엇을 믿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말아요. 믿음의 넉넉한 옷자락을 보여주고, 어찌해야 두려움을 가린 베일의 올을 풀 수 있는지 보여주세요.”

단정한 번역문으로 이 글을 다시 읽은 건 올해 초였다. 번역가 이다희가 옮긴 산문집 ‘보이지 않는 잉크’에 ‘손 안의 새’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산문집에 실린 수많은 글들은 자신의 소설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흑인 여성으로 산다는 일, 노예제, 문학 비평, 사회제도, 돈에 대한 문제 등 넓은 주제를 망라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의지하고 싶었던 것은 예술에 대한 그의 깊은 신뢰였다. 그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의 형태로 꺼내놓는 일, 예술을 통해 사유하고 대화하는 일의 가치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예술이 “완전한 인간으로 산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매우 결정적”이라 말한다. 예술이 인간성을 잃지 않게 하며, 세계를 더 선연히 바라볼 수 있게 하며, 정신을 완전케 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음악과 예술에 대한 작은 글들을 쓰는 내게도 이런 거대한 믿음이 필요했다. 때론 내가 언어로 다루는 예술이 어떤 가치가 있을지 반문하게 되고, 이 찰나의 소리에 천착해 글을 쓰는 행위가 무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모리슨의 글은 예술에 대한 글쓰기가 지닐 수 있는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섬세한 관찰자가 되어 행간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잉크를, 음악의 주변에 숨어 있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누군가 포착한 풍경 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장면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치와 힘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 글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늘 부족하거나 실패하더라도 쓰기를 시도하는 일은 여전히 의미있을 것 같았다. 왜 예술에 대해 쓰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을 모리슨의 글에서 찾는다. 예술에 대한 글쓰기는 예술을 감싸는 넓은 옷자락을 만드는 일이고, 그건 나아가 우리의 인식과 감각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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