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로 아동학대 막을 수 있나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영·유아 아동학대 살해 사건이 또 터졌다. 아이는 태어나서 겨우 세 번째 생일을 지나오는 동안 참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엄마 아빠가 이혼하였고, 아빠는 새엄마와 재혼하였으며, 그 새엄마는 동생을 낳았다. 상시적인 학대와 가혹한 폭력 앞에서 우는 것 말고 별달리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아이는 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다시 하늘로 돌아갔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br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의사 표현이 어려워 사실상 발견하기 어려운 영·유아기 학대 피해 아동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하여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운영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상시적 아동 위기 발굴시스템을 표방하며 화려한 보도자료와 함께 2018년 3월 개통되었다. 아동의 진료 정보나 어린이집·학교 출결 현황, 가내 부채 정보 등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학대 위험 가구를 예측하고 각 읍·면·동으로 해당 사례를 자동 통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렇게 통지를 받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직 공무원은 가정방문을 통해 아동학대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복지 서비스를 연계하거나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3년간(2018~2020년) 이 시스템을 통해 발굴된 위기 아동 22만7789명 중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학대 신고가 이뤄진 사례는 134명(0.06%)에 불과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매년 급증하면서 2020년엔 4만2251건이 신고되고, 그중 3만9929건이 아동학대 의심사례였던 점을 감안하면, 거의 기능이 멈춰 있는 것 아닌가.

재학대 사례를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최근 3년 동안 발생한 아동학대는 총 8만5554건으로 이 중 재학대로 이어진 사례는 6.1%인 5173건이었다. 이 재학대 사례 중 상당수인 2426건은 사례관리가 종결된 후 발생한 재학대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런데도 사례관리 종결 후 재학대 이전에 이 시스템이 아동의 위기를 발굴한 사례는 단 5.3%, 129건이었다.

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구축한 이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먼저, 시스템에서 모으는 정보의 범위가 ‘아동 맞춤형’이 아닌 방대한 정보 수집에 그치고 있어 제대로 아동 위기 상황을 감지하지 못하는 문제가 크다. 위기 아동 예측을 위해 사용되는 44개의 사회보장 데이터 안에는 아동수당 미신청, 영·유아 건강검진 미실시 등 아동 특화 데이터 10종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 탈락, 단전·단수 등 복지 사각지대 발굴 데이터와 비슷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 아동학대는 저소득층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에도, 소득 중심 특정 가구 유형 감지에 편향된 예측 모형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것이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판단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데이터인 아동의 연령, 가정폭력 신고 이력과 같은 고위험 변수를 중하게 고려하여 학대 고위험군을 함께 예측할 수 있도록 시스템 고도화가 필요하다.

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장 전문성 부족이다. 공식적으로 도입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가 아직도 있고, 담당 사회복지공무원 교육도 형식적인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그러다보니 담당자의 개인 역량에 따라 위기 아동 발굴이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심각한 학대에 놓인 아동 사건의 현장조사는 가해자들이 방문에 강한 불쾌감을 보이거나 아동을 위협하여 진술을 오염시키는 일도 많기 때문에 세심한 상황 개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년 7월부터 더 큰 정보시스템인 ‘아동통합정보시스템’이 운영된다. 아동에 대한 온갖 정보를 모두 모아 관리하겠다는 이 시스템 출범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장에 가서 아동의 안녕을 제대로 살필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사람은 사람이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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