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자질론읽음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칼럼]대통령 자질론

반세기도 훨씬 넘긴 이야기다. 서독 유학길에 들렀던 도쿄에서 처음 만난 외할머니는 나를 이끌고 절을 찾았다. 먼 외국 땅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할 외손자의 안녕과 성공 그리고 금의환향을 빌기 위해서였다. 주지 스님은 장도의 행운을 빈다면서 떠나는 나에게 ‘오마모리’라고 불리는 부적을 건넸다. 이 부적은 그 후 몇 년간 내 곁에 있었지만 이사하는 도중에 분실되었다. 이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닌 부적이었다. 학위는 빨리 받았지만, 그 이후 금의환향은 이루지 못했으니 부적의 힘도 그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사회학 교수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여의(如意)’라는 불교적 믿음에 따라 상서로운 구름 모양을 지닌 여러 가지 장신구도 있다. 주력(呪力)을 빌려 좋은 일을 성취할 수 있고 액(厄)을 물리침으로써 소원을 이룬다는 부적은 특히 도교적인 생활 세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한 야당 대통령 후보의 손바닥에 임금 왕(王) 자를 쓴 것이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다. 무속이나 믿는 사람이 과연 디지털 시대를 이끌 수 있는 자질이 있겠느냐는 논란으로도 이어졌다. 그러나 부적보다는 이른바 관상에 따라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두고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때로는 심심풀이로, 때로는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된다. 심지어는 정치학을 전공한 어떤 교수도 어떤 후보자가 용상(龍相)을 지녔기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세 번이나 낙선하고 말았다.

동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면인신상(獸面人神像)이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처럼 동물과 사람의 비슷한 모습을 연상해 사람의 성격을 판단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서양에서도 작가이자 최초의 사진기술도 개발한 나폴리 출신의 의사 잠바티스타 델라 포르타(1535~1615)가 사람과 동물의 골상을 대비시킨 <인간 인상학>을 남겼다.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이
한국의 문제를 풀 대통령의 덕목
이에 동의하면 관상의 추상성과
널뛰는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는
대통령의 자질론은 사라질 것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주장이 있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상 연구를 어떤 학문적인 체계 안에 담아보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중국 송나라 때 나온 <마의상법(麻衣相法)>은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관상학의 교과서라고 불리고 있다. 서양에서도 목사였던 스위스의 요하나 카스퍼 라바터(1741~1801)가 남긴 <인상학적 단편>은 이성의 승리를 구가하던 계몽기였음에도 괴테나 훔볼트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의 관심과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관상학 또는 인상학이 사이비 학문이라는 비판은 당시에도 있었지만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부터 형태심리학과 접목되면서 점차 부활했다. 최근 들어 특히 인공지능의 개발에 힘입어 얼굴과 성격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도 활발해졌다. 가령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심한 반칙을 일삼는 선수는 대부분 광대뼈가 나온 넓은 얼굴을 지녔다거나 동성애자의 얼굴도 얼굴인식 프로그램으로 거의 판독할 수 있다는 연구까지 나와 이를 둘러싼 사이비 학문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또 한국 대학에 ‘얼굴경영학’이라는 학과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 알았다. ‘얼굴을 경영하면 성공이 보입니다’라는 주제 밑에 얼굴경영, 마음경영, 인재경영을 종합한 교과과정이 어떻게 꾸려졌는지 흥미 있게 뒤져보았다. 이를 읽고 내가 먼저 떠올린 인물은 바로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이었다. 임직원을 채용할 때나 중요한 사업으로 사람을 만들 때 관상가의 조언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명나라 영락 황제는 신하를 채용하는 데 당시 상술(相術)의 대가로 알려진 <유장상법(柳莊相法)>의 저자 원충철(袁忠徹·1377~1459)의 조언을 받았다거나 ‘피타고라스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도 문하생을 받아들일 때 아예 자신이 직접 그들의 관상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인상경영학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그러나 관상은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심상에 못 미친다는 뜻에서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이라는 말이 동시에 있다. 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는다는 경지가 그리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이 될 사람의 관상에 대한 말은 많이 있어도 심상에 관한 이야기는 정직이나 청렴과 같이 윤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덕목에 대한 것이다.

경향신문이 창간 75주년을 맞아 벌인 여론조사를 보면 차기 대통령의 자질로서 도덕성을 꼽은 응답자의 비율은 19.8%인데 정책 및 공약은 26.2%, 능력 및 경력은 23.9%, 국민통합 및 소통능력은 21.8%로 나와 있다. 단지 60대 이상에서만 도덕성을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심상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고 보는 대통령의 추상적인 자질보다는 우선 한국 사회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대다수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와 도덕은 하나여야 한다는 전통적인 도덕주의에 근거한 판단보다는 무서운 속도로 기능이 분화하는 한국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정치의 본질은 종교나 도덕에 의해 규정된 선악의 피안에 있다는 마키아벨리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선거철만 되면 후보자들은 경쟁적으로 교회와 성당이나 절을 부지런히 찾는다. 종교와 가까우면 그만큼 더 정직하고 도덕적인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아직도 믿는 것 같다. 비록 이런 행태가 정치인의 ‘코스프레’라 할지라도 유럽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현재 한국에서 주요 정당의 당원 수는 더불어민주당이 400만을 넘었고 국민의힘도 300만 선을 넘어섰다. 독일에서는 1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이른바 ‘국민정당’이라는 사민당 그리고 기민당과 기사련을 합친 보수연합의 당원 수가 각각 42만과 54만 명 정도다. 녹색당은 10만이다. 당원 수의 인구비를 고려한다면 한국은 독일의 10배 이상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데도 당심과 민심이 다르다는 소리가 왜 나오는지에 대해 나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정치가 과도하게 도덕이나 감정에 의존하다 보면 우리가 현재 사는 지극히 복합적인 구조와 기능을 지닌 사회를 너무 단순하게 보게 된다. 이의 결과는 근본주의, 아니면 정치혐오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회의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촉진한다. 오는 대선이 후보자에 대한 ‘비호감 대선’이라는 말이 나도는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록 정치인에게서 성인군자의 심상을 보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치인의 도덕적 자질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탈주술(脫呪術)의 합리적인 세계에서 정치적 행위의 도덕적인 동기와 이의 실제적인 결과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와 긴장 관계에 특별한 주목을 돌린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역사의 수레바퀴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정치에서 이상적인 이념에 대한 확신을 앞세운 ‘심정 윤리’와 어떤 행동의 결과를 문제 삼는 ‘책임 윤리’를 대비시키면서 이 둘 사이의 상호보완과 균형에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의 출발점을 찾았다.

1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독일의 위기 상황에서 그가 특별히 강조한 정치인의 자질은 열정과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이었다. 현재 한국적인 정치 상황을 생각하면서 이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게 된다. 코로나가 몰고 오는 사회적 갈등의 해결은 물론, 격화되는 미·중 갈등으로 어려워질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면서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촌이 당면하고 있는 공동의 과제를 과연 누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는지.

“정치는 정열과 균형감을 지니고 두꺼운 널빤지를 힘 있게 천천히 뚫는 것”이라는 베버의 결론에 동의한다면 주술 수준의 관상과 심상이 열거하는 추상적인 덕목, 아니면 하루가 멀게 널뛰는 듯한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대통령 자질론은 사라질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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