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류 에세이와 문해력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김월회의 행로난]떡볶이류 에세이와 문해력

곳곳에서 ‘문해력’이란 말과 마주친다. 이 말의 영어 단어를 음차한 ‘리터러시’라는 말도 곧잘 쓰인다. 디지털 과학기술 시대인 만큼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춰야 한다든지, 세계화가 일상의 기본이니 글로벌 리터러시를 갖추어야 한다 등이 그 예다. 온라인 기반 미디어가 일상적 소통 수단이 된 만큼 미디어 리터러시를 익혀야 한다는 말도 종종 접한다. 한 공영방송에서는 <문해력 유치원>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 언뜻 문해력의 전성시대라 착각될 정도로 문해력이란 난도 높은 어휘가 우쩍 사용되고 있다.

‘떡볶이류’ 에세이란 말도 있다. 그림 위주로 구성한 지면에 짤막한 글을 얹힌, 흡사 그림동화 같은 에세이를 가리킨다. 글은 “가장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사실 별거 아니에요” 식의, 따뜻한 문체에 자신을 도닥이고 치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를 떡볶이류라 한 까닭은 힐링용으로 널리 읽힌 저명 에세이의 제목에 떡볶이가 있어서였다. 떡볶이류는 이 에세이의 변형된 아류작인 셈이다.

그런데 떡볶이류 에세이가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적잖이 오르자 2030세대 사이에서 이에 대한 논전이 일었다. 글이 주가 아닌 데다 깊은 사고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내용이다 보니 한편에서는 이를 에세이라 할 수 있는가, 힐링을 상품화하여 판매량을 높이려는 속셈 아닌가 하는 등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다른 편에서는 20·30대가 이런 얕은 위로라도 받아야 할 만큼 힘든 거다 같은 옹호가 이어졌다.

어느 한쪽을 편들려 함이 아니다. 떡볶이류 에세이와 문해력이란 어휘의 성행은 비유컨대 이란성 쌍둥이다. 둘 다 현상을 애써 읽어내려 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표상하기에 그렇다. 둘 다 우리 사회가 문해력에 별 관심 없음을 일러주는 표지이자 그렇기에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역량이 저하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좌이기에 그렇다.

의사소통 역량의 저하가 유발하는 폐해는 심각하고 거대하다. 가짜뉴스의 창궐과 언론 기능의 왜곡 등은 그 단적인 예다. 가짜뉴스가 횡행하고 언론이 제 역할을 안 함으로써 치르게 되는 사회적 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문해력이란 어휘 사용이 부쩍 늘었는데 떡볶이류 에세이가 도리어 환영받는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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