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풍뎅이연구회’는 어디로 갔을까읽음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딱 5년 전, 2016년 12월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에 열린 제6차 촛불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232만명(서울 170만명)이 참가했다. 대한민국 사상 시위 참가자 기록을 또 경신한 것이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거리의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도 웃었고, 집회에서 노동시간, 일상의 차별, 최저임금 등을 주제로 발언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여학생, 예술가, 주부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반복해서 노래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서의 ‘국민’은 그런 사람들을 의미했다. (요새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아우성친다는 그 ‘국민’이 아니라) 그렇게 촛불은 계급·세대·젠더의 차이를 잊거나 넘어 박근혜 정권의 퇴출만이 아닌, 근본적 사회개혁이라는 대의에 대동단결하는 것처럼 보였다. 즉 정치인들이 말로만 추구하는 소위 ‘국민통합’이라는 게 실제 이뤄진 순간들이었다.

촛불은 무지개색 연합군이었다. 그 저변을 받치는 힘은 역시 민주노총·전농·전교조·참여연대 등 진보 시민사회로부터 나왔지만, 2016~2017년 촛불의 강력한 중핵이자 상징은 무명의 시민들과 그 가족, 친구들로 이뤄진 ‘자유로운 개인들의 네트워크’였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장수풍뎅이연구회’처럼 웃음, 풍자, 연대 그리고 발랄한 자기표현을 내용으로 한 ‘연합들’ 말이다. 11월19일의 4차 촛불집회에서부터 민주묘총, 범야옹연대, 얼룩말연구회, 거시기산악회, 전국아재연합, 트잉여운동연합, 응원봉연대, 일못하는사람 유니온 같은 ‘연합’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들은 21세기 한국에 도래한 새로운 여성, 시민, 노동자, 청년들의 주체성과 그들의 ‘아래로부터의 정치’가 무엇인지, 높이 쳐든 깃발로 표현해주었다.

그 이후의 과정도 모두 아는 대로다. 촛불집회는 해를 넘겨 20번 더 이어졌지만 박근혜 탄핵을 성취한 후 중지되었고, ‘촛불’은 급격히 기성·제도정치의 함정에 빨려들어갔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들은 소규모의 조직화나 풍자에 유능했고 꽤 끈질겼으나, 지배체제를 완전히 해체·대체할 힘까지는 없었다. 촛불의 현장을 만들었던 노동·시민단체들도 그런 용기나 조직력은 없었다. 새 공화국을 위한 상상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촛불 ‘혁명’에 값할 조직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헤어지기 시작했다. 촛불의 일부는 팬덤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개혁과 낡은 것의 교착상태가 이어진 ‘촛불 이후’는 ‘조국 사태’에 이르러 파탄으로 종결되었다. 조국 개인에 대한 찬반에 함몰된 정치가 ‘촛불’을 찢어 망가뜨렸다. 서초동은 ‘검찰개혁, 언론개혁’의 핵심을 겨눴지만, 대신 새로운 특권층의 반칙과 부패 문제를 시야에서 지우는 큰 한계가 있었다. 광화문은 애초부터 구래의 보수와 탄핵불복 세력의 주도권으로 ‘내로남불’과 특권 반대의 민의를 재현할 수 없었다. 팬덤정치와 ‘어용화’가 합리적 전략을 압도하고, 감정이 앞장섰기에 많은 이들은 환멸을 느끼고 아예 입을 닫아버렸었다. ‘장수풍뎅이연구회’와 여러 ‘연합들’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2016년 12월4일 바로 그날, 성남시장 이재명은 세월호 진상규명 차량을 타고 ‘독재세력으로부터 특혜와 국민의 세금으로 살쪄 지금 모든 권력을 독점한 재벌들이 국정농단 사건의 뿌리’라 외쳤다. 그는 그런 ‘사이다’ 발언으로 촛불시민들의 박수를 받아 대권후보로 커갔다. 윤석열은 문재인의 판단으로 발탁되어 ‘적폐청산’이라는 이 정부 제1호 공약을 검찰권으로 이행했다. 그는 검찰총장 임명 청문회에서 촛불집회에 대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라 했다.

그러니까 이번 대선은 촛불의 형해 위에서, 또다시 한국식 대의제의 한계 지워진 틀 위에서 치러진다. 문재인 등의 ‘횡령’과 일부 지식인(?)들의 망상과는 정반대로, 애초에 촛불이 ‘혁명’의 일종이었거나 또는 혹은 살아서 ‘연속혁명’이었다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도달점이 아닌 일시적 도구거나 극복 대상일 뿐이어야 했다. 물론 그것은 특권동맹과 ‘수구’가 탄핵과 선거로 심판받은 그 길을 더 밀고나가 진행되는 것이었겠다. 2018년까지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지지율은 10%에 불과했다.

또 한 번의 세모에 인사를 전하고 싶다. 안녕들 하십니까? 코로나19와 부동산 광풍에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장수풍뎅이, 범야옹, 트잉여, 일못하는사람, 전국아재, 야광봉… 또 다른 많은 ‘연합’분들. 5년 전의 깃발은 마음속에라도 보관하고 계신지요. 언제 우리가 또 만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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