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호법 위헌과 ‘괴물의 시간’

오창은 중앙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

지금으로부터 92년 전의 일이다. 1929년 11월4일 새벽 3시, 경주에서 자동차가 전복되는 큰 사건이 발생했다. 경주군청에 근무하던 이귀돌(李貴乭·22)이 친구 세 명과 기생 두 명을 데리고 불국사로 유람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운전자는 강본자동차부(岡本自動車部)의 일본인 강본무문(岡本武文·22)이었고, 사고의 원인은 음주운전이었다. 운전기사도 취하도록 술을 마셨고, 기생 서석란은 위기감을 느껴 남은 술을 자동차에 숨기기까지 했다. 이 사고로 이귀돌이 사망했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근대사 초기의 음주운전 관련 사망기록이자, 대형 인명 피해 사고기록이었다.

오창은 중앙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

오창은 중앙대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교수

1930년 8월5일에는 또 다른 음주운전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오토바이 운전자였다. 오토바이가 황금정, 지금의 을지로로 돌진해 김원순(金元淳·77) 노인이 사망하고, 3명이나 부상당했다. 놀랍게도 운전자는 동대문경찰서 현직 순사 리덕용(李德用·25)이었다. 그는 불구속 수사 도중 사라졌다. 사람들은 경관 신분으로 다수 인명 피해를 낸 것을 비관하여 자살이나 하지 않았나 우려를 했었다. 리덕용은 사건 이후 중국 봉천(지금의 중국 선양)으로 도피했다가 영사관 경찰서의 수배로 체포되어 공분을 샀다. 근대사 속 음주운전 사건들은 가해자의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의 삶이 어떤 고통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자동차의 역사는 1903년에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용 차량으로 ‘포드 A’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교통사고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피해자들의 희생과 고통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음주는 인류와 오랜 기간 함께해온 생활문화의 일부였다. 자동차는 근대 과학기술의 산물이었다. 오랜 음주문화와 근대의 자동차가 결합하면 ‘살인기계, 괴물’이 탄생한다. 음주로 인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듯이, 인간이 조작하는 기계 또한 음주로 인해 ‘미친 금속덩어리’로 돌변한다. 문화의 변화와 법 개정을 통해 희생자의 관점에서 기계문명을 제어하려는 노력은 종착지 없는 여행과 같다.

지난 11월25일 헌법재판소는 2회 이상 음주운전 위반자에 대한 가중처벌을 규정한 윤창호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핵심 쟁점은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 위반’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음주운전 2회 위반 규정과 관련해, 과거 음주운전 위반이 10년 이상 전에 발생한 것이라도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 ‘시간 제한 없는 후범 가중처벌’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선애·문형배 재판관이 제출한 소수의견은 피해자 편에서 바라본 진실을 보여준다. 두 재판관은 “우리나라에서 40%가량이 음주운전 단속 경력이 있는 재범에 의한 교통” 사고로 “국민 일반의 생명, 신체, 재산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두 재판관은 “재범 음주운전 범죄를 엄히 처벌하고 예방하고자 하는 형사정책적 고려”를 강조하며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 위반’ 판단에 대한 반대의견을 명시했다.

돌이켜보면, 윤창호법은 제정되었으나 음주운전 재범 사례가 지속되었던 것이 큰 문제였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월부터 10월 사이에만 2회 이상 음주운전자가 4만2317명이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우려하는 ‘중벌에 대한 면역성과 무감각’이 계속되었고, 음주운전 재범자가 2019년 이후 3년 동안에 15만여명이나 누적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창호법 위헌 판결도 ‘형벌적 수단’의 한계를 인정한 사례로 볼 수 있기에 안타깝기만 하다.

윤창호씨는 2018년 9월25일 부산 해운대구 미포오거리에서 음주운전자가 몰던 BMW차량에 의해 사고를 당한 후 사망했다. 윤창호법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10명의 친구들이 법안의 초안을 작성하고, 국회의원들에게 제정 제안을 했고, 시민들에게는 서명을 받아 입법에 성공했다. 윤창호씨의 친구들은 그를 떠나보낸 후 ‘애도’의 마음을 특별법 제정이라는 실천운동으로 전환했다. 그 결실이 윤창호법이었으며, 시민 입법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였다.

법 제정은 음주운전이라는 위반자·가해자를 배려하는 방식이 아니라, 음주운전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법으로 음주운전을 제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음주운전 문화가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윤창호법 위헌 판결을 놓고 여론이 분분한 지금이야말로 법과 음주운전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함께 바뀌어야 할 전환기이다. 국회의 신중하고도 빠른 보완 입법으로 ‘괴물의 시간’은 오래 지속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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