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패싱하는 20대 대선읽음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20대 대통령 선거 여야 후보가 결정되면서 다양한 공약이 쏟아진다. 청년실업, 코로나, 부동산, 북핵 문제 등 산적한 현안과 관련해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온다. 하지만 삶의 가장 기초인 음식 관련해서는 여야 모두 언급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화두를 던진 개고기 논쟁 정도가 전부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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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9대 대선 때도 비슷했다.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먹거리 공약은 식품안전(특히 불량식품 근절)과 식량안보가 전부였다. 19대에는 문재인 후보가 도시와 농어촌이 상생하는 농식품 체계 등을 뼈대로 하는 국가먹거리종합전략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진일보된 공약이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이 공약의 실현 정도는 미미하다. 대통령 공약 체크 누리집(문재인미터)을 보면, 관련 공약 진척도는 25%에 그쳤다.

한국 정치인만 먹거리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지난해 미국 대선도 비슷했다.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중소 규모 자영농에 대한 지원을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 정부가 지원금의 90%를 대두·옥수수를 생산하는 대규모 농장에 몰아준 반면 온실가스를 줄이고 건강을 지키는 친환경농은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시민단체들은 바이든 후보가 먹거리 위기를 기후와 연결해 생각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은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먹거리의 새로운 패러다임만큼 시급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식량의 안정적 수급이라는 고전적인 이슈다. 전 세계적으로 먹거리를 포함한 생활물가가 들썩거리고 있는 탓이다. 최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를 보면, 세계 식량 가격은 지난해에 견줘 30% 이상 올랐다. 식용유·커피 가격도 사상 최고 수준이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이 주도하는 물가 상승)마저 우려된다. 코로나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 세계 공급망 교란에 기후위기까지 겹친 것이 원인이다. FAO는 지난달 말 로마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코로나로 인한 가구의 소득 감소로 현재 43개국의 4500만명이 기아에 직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식량자급률이 낮고 사회안전망은 촘촘하지 않은 우리나라도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어려운 사람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실제 지난 6월 한 구직업체의 구직 희망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2명 중 1명이 ‘매일 밥을 챙겨 먹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43%)을 꼽았다.

또 지난해 10월 비정부기구인 ‘희망친구 기아대책’의 ‘코로나19에 따른 전국 취약가정 아동·청소년의 생활 실태조사’를 보면, 코로나로 하루 중 식사를 한 번도 하지 못하거나 1회에 그친다고 답한 아동·청소년이 3.5%였다. 그나마 이들이 먹는 식사가 삼각김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인 경우도 많았다. 요소수 대란 같은 식량대란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미 건강한 밥 한 끼를 꿈꾸기 힘든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밥’은 북핵이나 부동산 가격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백성은 밥을 하늘로 여긴다”는, 오래됐지만 여전히 유효한 경구를 다시 한번 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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