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도 합의가 필요하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역사는 이렇게도 흘러간다. 노태우와 전두환이 한 달 간격으로 연달아 사망하면서 그들의 생애만큼이나 많은 논란이 생겼다. 숱한 논란 중에는 한국 언론과 외국 언론의 보도 양상에 대한 것도 있었다. 외국 언론들은 “군부독재자 전두환”이라고 수식어를 붙여 보도했는데, 한국 언론은 그나마 잘한 곳도 별다른 수식어 없이 “전두환씨” 정도로 보도했다는 것이다. 전두환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사실 이는 속보에서만 그랬을 뿐, 많은 언론들이 지면보도에서는 ‘학살자’ ‘암흑의 역사’ 같은 표현으로 정확하게 수식했지만, 어쨌거나 곱씹어 볼 만한 주제다. 외국 언론은 속보에서도 수식어를 붙였는데 왜 한국 언론은 그러지 않았을까. 일각의 비판처럼 예의를 차렸기 때문일까. 글쎄, 지면보도에서의 정확한 수식어들을 떠올리면, 그런 지레짐작보다는 한국에서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별다른 수식어가 없어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상식’이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좀 더 합리적이다.

그런데 상식이 뭔가. 상식이라는 개념도 합의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에게 상식인 것이 기성세대에겐 상식이 아닐 수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전두환이라는 이름도 그렇다. 다행히도 한국의 교육과정은 새로운 시민들에게 이 역사를 가르치기를 소홀히 하지 않지만, 오래된 시민들도 그러했듯 교육하는 자의 의도와 교육받는 자의 의지는 종종 엇갈리는 법이다. 5·18기념재단이 매년 전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청소년 5·18 인식조사’ 결과는 적지 않은 수의 청소년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잘 모르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18 민주화운동을 모르는 이들에게 전두환은 독재자 또는 전직 대통령으로 ‘암기’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학살자로 ‘이해’되지는 못할 테다.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사건으로 상식의 범위를 논하는 게 마땅치 않다면, 20여년 전 사건인 남북정상회담은 어떤가? 10여년 전 무상급식 논쟁은? 불과 5년 전 촛불집회는 그 당시 유아였을 어떤 청소년들에게도 상식인가?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각각의 사건들을 별다른 설명 없이 언급해도 될지 언제나 고민한다. 그 시대를 온전히 살아낸 어떤 성인들에게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 상식이지만, 그렇지 못한 어떤 성인들 또는 청소년들에게는 한참의 해설이 필요한 사건들이다.

역사적 지식에 대해서라면 차라리 이런 논의가 쉬울지도 모른다. 모르면 가르쳐주거나 하다못해 잘 만든 교양서적 한 권 추천해주면 그만이다. 가치관의 문제가 되면 난도가 높아진다. 심지어 이 문제는 세대로 갈리지도 않는다. 예컨대 ‘모두가 잘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명제에 대해 우리는 합의하고 있는가? 이 명제가 정치적으로 첨예해 보인다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명제는 어떤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이런 ‘상식적인 주장’들에 충분히 합의하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이 명제들은 ‘위선적’이라는 비난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다.

다시 말해 우리는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득할까’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야 하는 곤경에 처해 있는 것 같다. 상식적 사실도, 상식적 가치관도 모두 불분명한 시대.

몰상식하다고 비난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곤경을 벗어나려면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져야 하며, ‘쉬운 말’에 강박적으로 집착해야 하고, 합의되지 않은 지점을 치열하게 찾아내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대선이라는 최대의 정치 이벤트는 사람들을 성급하게 만든다. 상식에 합의하지 못한 한 무더기의 시민들에게 말 걸기보다 자기들끼리의 상식을 공유하는 시민들만 바라보며 달려나간다. 그렇게 정치가 점점 나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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