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석’구분 잘하기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옥석’구분 잘하기

이제 대통령 선거의 계절이다. 선거에서는 옥석(玉石)을 잘 구별해야 한다고 얘기하고는 한다. 값비싼 보석인 옥(玉)과 평범한 돌멩이인 석(石)을 잘 구분(區分)해야 하듯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대통령으로 누가 가장 적당한지 유심히 살펴 정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간혹 옥석구분(玉石俱焚)을 옥석을 가린다는 뜻으로 잘못 해석하지만, 원뜻은 옥과 석이 함께 아울러(俱) 탄다(焚)는 뜻이다. 옥석을 제대로 구분해 놓지 않으면 둘을 함께 망친다는 의미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도 많은 이가 투표에 참여하기를. 옥석구분(玉石俱焚)을 피하려면 옥석을 미리 잘 구분(區分)할 일이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푸른 옥(玉)과 보통 돌멩이인 석(石)은 구성성분이 다르지만, 구성요소가 같아도 다른 모습인 것이 많다. 보석인 다이아몬드와 연필심으로 쓰는 흑연은 같은 구성원소인 탄소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들의 배열에 따라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값싼 흑연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기압과 온도에서는 둘 모두 안정적으로 상태를 유지한다. 다이아몬드는 계속 다이아몬드이고 흑연은 계속 흑연이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처럼 같은 조건에서 두 상태로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겨울에 쓰는 액체 손난로도 그렇다. 가만히 두면 손난로 안에 담긴 물질이 액체 상태로 있지만, 작은 금속 절편을 손가락으로 딸깍 누르면 안에 담긴 물질이 고체 상태로 변하면서 열을 내놓아 주변 온도를 높인다. 한번 고체 상태가 되면 다시 금속 절편을 눌러도 액체 상태로 바뀌지는 않는다. 액체 주머니 손난로의 두 상태 중 고체 상태가 더 안정적이고, 액체 상태는 덜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상태를 유지하지만 다른 상태에 비해 덜 안정적인 상태를 준(準)안정 상태라고 부른다. 주머니 손난로에서는 고체 상태가 안정 상태, 액체 상태가 준안정 상태다. 준안정 상태가 안정 상태보다 에너지가 더 높고, 따라서 주머니 손난로는 액체에서 고체로 변하면서 두 상태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열을 밖으로 내놓게 된다. 안정적인 상태에 있는 물질을 준안정 상태로 거꾸로 바꾸려면 외부에서 에너지가 유입되어야 한다. 일단 고체로 변한 주머니 손난로는 에너지의 유입이 없다면 저절로 액체로 바뀌지 못한다. 뜨거운 물에 넣어 에너지가 밖에서 유입되면 한번 써서 딱딱해진 주머니 손난로를 액체 상태로 바꿔 다시 쓸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기압과 온도에서 흑연과 다이아몬드, 둘 모두를 볼 수 있는 이유도 액체 주머니 손난로와 같다. 그렇다면 둘 중 어느 상태가 더 에너지가 낮을까? 깊은 땅속 아주 높은 압력 아래에서는 다이아몬드가 흑연보다 더 안정적인 상태다. 하지만 대기압에서는 흥미롭게도 더 안정적인 상태가 흑연이어서 온도가 아주 높아지면 다이아몬드는 흑연으로 상전이를 한다. 공기 중이라면 다이아몬드는 높은 온도에서 산소와 반응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타기도 한다.

옥이나 석이나 다 암석이다. 보석과 암석을 구별하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수많은 암석 중 흔한 암석과 다른 독특한 특성이 있는 암석, 그리고 쉽게 발견되지 않아 희귀한 암석 중 어떤 암석이 높은 값으로 거래되는 보석일 뿐이다.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외계행성 중에는 내부에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행성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다이아몬드가 흔해서 값비싸게 거래되는 보석 취급을 받을 리는 없으리라. 마찬가지로 각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면 내 눈에 옥이라고 다른 모든 이가 옥으로 봐줄 리 없고 내 눈에 석으로 보여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옥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마땅히 지지할 후보가 딱히 없다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우리는 매의 눈으로 그나마 나은 후보를 골라내야 한다. 옥석을 구분하려 애쓰지 않으면, 둘 모두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를 망치는 옥석구분(玉石俱焚)이 될 수 있다. 둘 모두 석으로 보여도 그나마 나은 석을 고르려는 노력, 둘 모두 옥으로 보여도 더 나은 옥을 고르려는 모두의 노력이 꼭 필요하다. 같은 탄소로 이뤄져 있어도 배열에 따라 다이아몬드도, 흑연도 될 수 있다. 각각은 사소해도 많은 구성요소의 멋진 연결이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만든다. 투표했다고 끝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보다 더 잘 이끌어갈 더 나은 대통령, 더 나은 정부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연결된 노력이 아닐까. 자랑스럽고 멋진 나라를 만드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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