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증오의 노예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순수! 순수 우리말 같다. 아니다. ‘다른 것이 전혀 섞이지 않았다’는 뜻의 한자말이다. 순수는 대체로 좋음을 형용하지만 ‘순수한 관계’에서 순수는 다르다.

영화 <순수의 시대>는 ‘순수’와 ‘시대’가 충돌하는 부조리극이다. ‘순수’는 단 한 사람, 전쟁 영웅 김민재의 한 차례 감정을 지시한다. 당시는 제도, 규범, 이익에 따라 사회적 관계를 이루고 사는 인륜의 시대다. 민재도 인륜적으로 살았고 성공했다. 그런 그가 순식간에 제도, 규범, 이익의 바깥에 있는 여인 가희에게 그야말로 순수하게 이끌린다. 인륜의 시대와 충돌한 그의 순수 감정은 죽음을 부른다.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전남대·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세계가 탈신성, 탈인륜의 벼랑으로 미끄러진 지 오래다. 탈신성이 세속화라면 탈인륜은 순수화다. 세속화는 공공성, 순수화는 친밀성의 주된 현상이다. 세속화된 국가에서 연인이나 친구를 연결하는 끈이 극도로 순수해진다. 인륜적 제도나 규범은 더 이상 두 사람의 친밀성을 생산하지 못한다. 이익 계산을 사랑이나 우정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은밀한 만큼 부차적이다. 이제 친밀 관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끈은 (욕구)감정뿐이다.

감정 끈의 강도는 다양해도 한 줄뿐인 관계는 끊어지기 쉽다. 고강도의 열정적 사랑조차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래도 열정적 사랑은 사그라지기 전까지 모든 인륜적 규범과 타산적 계산을 무시하고 파괴할 만큼 문화적 전위이고 혁명이다. 그런 사랑도 시간의 공격을 견디지는 못한다. 이것도 모른 채 우리 세대는 결혼했다. 비극은 필연이다.

과거 사랑조차 증오하는 자들이
대선 판에서 칼춤을 춘다
성폭력 피해자까지 죽인 칼춤이
사랑의 능력도 빼앗는 건 아닐까
친밀성 생산의 최대 위기다

결혼은 인륜적 제도로서 계약이다. 순수의 시대 결혼 계약은 (욕구)감정을 제약할 힘이 부족하다. 우선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 곧바로 밝혀진다. 특별한 사람은 없다. 특별한 관계만 있을 뿐이다. 부부라는 특별할 관계는 지속적 감정 교류와 관리를 요구한다. 매 순간 서로 대화하고 협상하고 타협하면서 재계약을 해야 한다. 순수의 시대 특별한 관계의 친밀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부부라고 반드시 친하지 않다. 친밀성 없이 부부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이해관계만 맞으면 된다. 인륜적 부부의 대부분이 그렇게 산다. 반면 순수한 부부는 친해야만 같이 산다. 친밀성이 둘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기 때문이다. 친밀은 몸과 마음의 교류다. 몸과 마음은 말을 해야 안다. 말 안 해도 안다고? 순수한 사람은 모른다.

부부(연인)관계에서 말이 사라진 경우는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말이 필요 없는 위계가 지배하는 경우다. 간섭 안 해도 언제나 개입해서 교정할 수 있는 실질적 지배권을 가진 가장은 대체로 말수가 없다. 또 다른 경우는 말이 신뢰받지 못할 때다. 믿을 수 없는 말도 믿어주는 사람에겐 모든 말은 한다. 반면 말만 하면 평가하고 지도하는 사람에겐 침묵하게 마련이다. 최근 이런 방식으로 침묵을 강요한 남자들이 여기저기서 피해자 서사를 늘어놓으며 증오를 부추긴다.

남성주의, 남가부는 없는데, 웬 여성주의, 여가부냐고 울부짖는 증오의 노예들이 대체로 이런 피해자 놀이에 열광한다.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연인에 대한 사회적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연인에게 배신당했다고 말하려면 우선 자신이 말을 빼앗은 도둑은 아니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을 해도 믿는다는 확신을 연인에게 주었는지 되물어야 한다. 아니라면 나는 배반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말을 훔친 도둑일 가능성이 높다. 폭력, 고통과 시름하면서조차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던 그를 지배했던 가부장이었던 셈이다. 가부장주의가 남성주의다.

순수한 사랑, 순수한 우정은 한쪽의 감정만 사라져도 깨진다. 영원한 사랑과 우정은 말로 하는 약속이다. 약속은 반드시 깨진다. 그러니 약속 안에는 그것이 깨진 뒤에 받게 될 상처를 감수하겠다는 다짐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결혼 계약도 마찬가지다. 계약이 깨질 때 생기는 상처와 부작용을 공정하게 나누겠다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신뢰는 이제 신뢰할 만하지 않다. 사회학자 기든스에 따르면 “신뢰란 상대방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이며 또한 상호 간의 유대로서 앞으로의 상처를 견디어낼 능력이기도 하다.” 이런 신뢰조차 없으면 사랑도 우정도 비극으로 끝나는 시대, 순수의 시대다. 자신의 과거 사랑조차 증오하는 사람들이 대선 판에서 칼춤을 춘다. 성폭력 피해자까지 죽이고 있는 저들의 칼춤이 다음 세대들에게 사랑의 능력, 친구를 사귈 능력조차 빼앗은 것은 아닐까? 친밀성 생산의 최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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