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과 벽오동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서울은 그동안 제법 따뜻하더니, 금일부터 영하 4~5도로 기온이 하강하여 재작년에 심어놓은 벽오동도 얼지 말라고 짚으로 싸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인 1961년 12월. 마침 유럽 전시를 위해 파리에 머물던 최순우에게 전형필은 벽오동의 소식을 전한다. 자신의 부재를 예감한 것일까. 전형필은 벽오동에 겨울옷을 입혀주었다. 사실 벽오동은 최순우가 유럽 출장 전에 전형필의 이현서옥 창가에 심어준 것이다. 둘 사이는 각별하여 전형필은 최순우에게 벽오동의 소식을 수시로 전하곤 하였는데, 그해를 넘기자마자 갑자기 세상을 떴다.

전형필과 최순우. 한국 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거물이다. 전형필이 문화를 지켰다면, 최순우는 문화를 세상에 알렸다. 뚝심 있고 품 넓은 사람과 섬세하고 조촐한 사람의 깊고 두터운 교분은 한국 문화의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지금 세계적 위상을 떨치고 있는 K컬처의 씨앗은 이미 그때 잉태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밥 한 숟갈 제대로 배불리 먹기 힘든 시절, 한 걸음 앞서가 역사와 문화를 지키고 알린 인물들이다. 일찍이 학창 시절의 책 모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전형필의 수집 열정은 문화유산으로 번져갔다. 귀중한 문화유산에는 그에 합당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기와집 한 채 값을 부른 판매자에게 기와집 열 채 값을 지불했다는 일화에서 그의 인품이 드러난다.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우리 모두의 유산을 지켰으니, 우리는 그에게 빚진 바 크다. 최순우가 벽오동을 선물한 이유는, 전형필의 서재에 걸려 있던 추사의 ‘벽오동관’이라는 편액 때문이기도 하지만, 맑고 깨끗한 선비를 상징하는 벽오동에서 전형필을 떠올렸으리라.

중국에서는 복되고 길한 상서목으로 문인의 뜰에 자주 심었던 나무이다. 또한 잎이 넓고 수피가 청록빛이 돌아 시원스러운 맛이 있다. 특히 고려청자의 빛깔이나, 단청 색을 떠올리게 하는 벽오동의 수피 색깔은 독특하다. 넓은 잎과 푸른 수피, 늘품 있는 수관에서 풍기는 벽오동의 면모는 맑고 중후한 전형필의 풍모와 닮았다. 벽오동의 벽자는 푸를 벽(碧)자인데, 오방간색 중 서방간색으로 청색과 백색으로 만들어진다. 청색은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이고 백색은 진실과 순수함을 뜻하니, 청절하면서도 훈기를 지킨 전형필에 어울릴 만한 모양새라 하겠다.

간송미술관이 새 단장을 앞두고 있다. 내년 봄에는 간송의 화신 벽오동을 만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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