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임미경씨가 행복한 나라읽음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1977년 9월9일, 당시 16세였던 임미경씨는 봉제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 후배들을 ‘꼬드겨’ 농성 중인 작은 건물로 우여곡절 끝에 들어갔다. 경찰들은 그 건물을 둘러싸고 있었고, 임미경씨 동료들은 그 건물 안에 있던 노동교실의 폐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그날 이후 임미경씨는 같이 갔던 가장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미경이가 가자고 했어요”, 그렇게 경찰에서 친구를 주동자로 몰았다고 생각한 친구는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공포 혹은 환멸감 때문인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9월10일은 건물주가 아직 임대차 계약이 남은 노동학교에 건물을 비워줄 것을 요구한 날이었다. 마침 9월9일은 북한의 주요 기념일인 건국절이다. 언론은 북한 건국절을 기념해서 이 어린 소녀들이 농성을 한 것으로 기사를 썼고, 그렇게 소녀들은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가 되었다. 마음속에 이 사건을 묻어놓았던 임미경씨는 다시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미싱 타는 여자들>이라는 다큐영화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

1977년 하반기에 정권은 이제 막 자리를 잡으려는 한국의 노동조합을 제압하기 위하여 전태일의 모친인 이소선 여사를 전격 체포하여 경찰서를 거치지 않고 바로 구치소에 가둔다. 퇴근 길에 구치소 앞에서 “어머니를 석방하라”고 외치던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노동학교라고 생각한 경찰은 이 사무실을 문 닫게 했다. 자신들의 학교를 뺏길 수 없다고 생각한 노동자들이 폐쇄된 건물에 전격 진입하며 농성이 시작되었다.

농성하다 빨갱이 된 ‘미싱 소녀들’

이 사건은 16세 소녀 임미경씨를 감옥으로 가게 만들었고, 그녀의 삶도 다시는 전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60대가 된 그녀가 카메라 앞에서 정말 해맑게 그날을 회상하면서 당시 24세이던 이숙희씨, 23세이던 신순애씨와 그날의 얘기를 하는 것이 영화의 기본 골격이다. 아주 푸른 벌판, 세 대의 미싱이 놓여 있다. 그날의 미싱사들이 천을 잡고 미싱 작업을 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통계를 잠깐 열어봤다. 1970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57.8달러였다. 전태일 열사 사건이 벌어진 해다. 1977년은 1000달러를 살짝 넘어 1052.9 달러였다. 불과 7년 남짓한 기간 중에 국민소득이 4배가 되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렵게 빠른 속도로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에서 개발도상국으로 한국 경제가 도약하던 시절이다.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있으나마나 한 상황이었다.

다른 다큐 같으면 충분히 나왔을 당시의 진압 현장 사진이나 하다못해 경찰들이 건물 바닥에 깔았다는 매트리스 모습도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출연진의 담담한 구술은 비주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속에서 이미지를 만들도록 관객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준다.

임미경씨는 그날 현장에서 “제2의 전태일은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현장의 언니들은 임미경씨의 다리를 잡고 투신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역사란 무엇일까? 그날 임미경씨가 현장에서 투신을 했다면 우리는 청계피복노조의 전설로 전태일 열사와 ‘임미경 열사’를 배웠을지도 모른다. 그날 임미경씨는 투신하지 않았고, 영웅이 되지는 않았다. 영웅? 그 대신 임미경씨에게는 그가 버티며 살아낸 삶이 남았다. 영화의 내적 다이내믹은 이 순간에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너무 익숙한 영웅 서사와 과도한 역사적 의미에 대한 강조는 없다. 그날 이후 다시 보지 못한 제일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얘기하는 임미경씨의 얘기를 들으면서, 사실 눈물이 좀 났다. 나에게도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가 있다.

우리는 외주 청년의 계속되는 사고사 등 수많은 청년 노동자라는 난제 앞에 서 있다. 국민소득 3만5000달러를 눈앞에 둔 지금, 1977년 노동학교를 지키려 했던 소녀들의 얘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런 안도감으로 영화를 즐기기에는 지금의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다. 1977년의 1000달러 남짓한 국민소득이 35배가 되는 동안, 우리는 과연 35배 행복해졌을까?

지금 여기서 그녀는 행복할까

1977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일을 해야 먹고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한국인을 나눌 수 있다.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 프리랜서 등 노동시장은 분화되고 복잡해졌지만, 부모에게 자산을 물려받아 살아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여전히 한국 자본주의는 계급을 구분한다. 영화는 지금의 한국 자본주의가 16세 임미경씨에게 행복한 세상이 되었는가, 그런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또 다른 미덕은 따뜻하게 재해석된 노동 현장의 음악들이다. 음악감독 박성도의 음악이 너무 좋았다. 잠시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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