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와 배추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음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진실한 사랑은 없다.” 영국 작가 버나드 쇼의 말이다. 한때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특히 우리 음식 생각이 간절했다. 뜨끈하고 얼큰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유학생에겐 대체 불가의 음식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고달픈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보약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음식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멀리 아프리카 남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 ‘빈(貧)만 있고 부(富)가 없어 빈부의 격차가 없는’ 그곳에서 주민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태석 신부. 성당보다는 학교를 먼저 짓고 교육과 의료 활동에 매진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두 가지에 감탄했다. ‘금방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의 무수한 별’과 ‘손만 대면 금방 터질 것 같은 투명하고 순수한 아이들의 눈망울’이었다. 그것이 원동력이 되었을까. 그는 콜레라와 말라리아 환자로 악전고투하면서도 브라스밴드까지 조직하였다. 성직자에 교육자로, 또 의사에 지휘자까지 일인다역을 소화하느라 늘 분주했다.

그 와중에도 시간이 나면 병원 옆 조그만 텃밭을 가꾸고 바나나, 토마토, 배추를 심었다. 그는 인도 신부들과 함께 생활했으므로 바나나와 토마토는 인도 신부들의 것일 수도 있지만, 배추만큼은 그의 작품이었다. 힘들고 고달플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고국의 음식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재료도 부족하고 시간도 넉넉지 않았을 테니 얼치기 김치였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40~5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에 고향의 배추김치 맛이 제대로 날 리 없다. 그렇지만 김치 한 조각이 주는 마음의 평온을 생각하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맛난 음식이었을 게다.

생전에 그는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행복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삶에 발린 많은 양의 양념과 조미료에서 나오는 거짓의 맛”이라고 했다. 그에겐 양념과 조미료를 넣지 않은 진정한 삶이 행복한 삶이었으리라. 이태석 신부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던 영혼의 음식, 배추김치. 오늘 밥상에 오른 배추김치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이제 이태석 신부가 뿌린 씨앗이 훌쩍 자랐다. 톤즈 마을 브라스밴드의 일원이자 미사를 돕던 토마스 타반 아콧은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다. 그는 이태석 신부가 기다리는 남수단의 톤즈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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