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한계’ 50년, 무엇을 할 것인가?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성장의 한계>가 올해로 출간 50주년을 맞는다. ‘인류의 곤경에 관한 로마클럽 프로젝트 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지금까지 1000만부 이상 팔리며 세계적으로 성장에 관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 프로젝트는 데니스 메도스를 책임자로 17명의 MIT팀이 1970년 여름부터 18개월간 수행했다. 이 팀은 ‘월드3’라는 컴퓨터 모형을 사용하여 1900년에서 2100년까지 전 세계의 인구, 농업생산, 천연자원, 산업생산, 오염의 추세를 12개의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당시는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10%에 달하던 고도성장의 시대로 ‘성장의 한계’라는 말은 상상하기도, 인정하기도 힘들어서 관심만큼이나 많은 비판과 반박이 쏟아졌다. 게다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도 충족하지 못하던 가난한 나라는 더 성장해야만 했다.

<성장의 한계>의 결론은 세 가지다. 첫째, 성장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인구와 경제 성장 추세가 변함없이 계속되면 21세기의 어느 시점에 성장의 한계에 이르러 천연자원, 인구, 산업생산, 식량이 걷잡을 수 없게 위축, 붕괴할 것이다. 붕괴 양상은 시점과 지역에 따라 다양할 수도, 전 지구적일 수도 있다. 둘째, 정의로운 전환은 가능하다. 성장 추세를 바꾼다면 생태적·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세계로 전환할 수 있고, 이 전환은 이전보다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셋째, 시간이 중요하다. 일찍 시작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성장의 한계: 30주년 개정판>은 성장 추세가 변하지 않았을 때의 시나리오 예측과 실제 추이가 거의 일치했다며 30년 전의 결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40년이 지난 2012년, 호주의 물리학자 그레이엄 터너도 1970년에서 2000년까지의 실제 자료가 시나리오의 예측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다. 인류는 성장의 한계와 붕괴를 향해 순항 중이다.

변화는 분석 아닌 행동으로 발생

사실 <성장의 한계>의 첫 번째 결론은 컴퓨터 모형이 아니라 상식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진실이다. 1973년 에른스트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이 점을 지적했고 <30주년 개정판>도 이를 언급하고 있다. 유한한 지구에서 성장은 자원 생산력과 폐기물 흡수력으로 결정되는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한계를 무시하고 지구가 감당할 수 없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해왔다. 인류는 기술과 시장만 믿고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기술로 한계를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한계인 ‘시간’을 허비해왔다. 결과는 뻔하다. “유한한 세계에서 기하급수적 성장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 믿는 사람은 미치광이거나 경제학자”뿐이다(케네스 볼딩). ‘성장의 한계’는 상식의 과학적 예견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성장 이데올로기에 기댄 무모한 낙관주의가 여전히 상식을 압도한다.

<30주년 개정판>의 저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지구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서 무익한 논쟁만 일삼으며, 선의를 표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시간을 허비했다”고 비판한다. 상식으로도 알 수 있는 진실을 줄곧 외면해온 것이다. 이들은 <성장의 한계> 20년 후인 1992년에 인류가 이미 “지구의 수용 능력 한계”를 초과했다고 말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무엇을 할 것인가?” 자문한다. 이들은 “꿈꾸기, 네트워크 형성하기, 진실 말하기, 배우기, 사랑하기”를 제안한다. 과학자로서는 뜻밖이고 문제에 비하면 너무 소박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제안은 과학적으로 엄격한 자료 처리와 분석을 마친 후에야 나온 것이다. 세상의 변화는 결국 ‘분석’이 아니라 ‘행동’으로 일어난다.

각자 물어보자.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더 좋은 삶,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가? 조금씩 사회의 불평등과 갈등은 줄고 자연 생태계가 회복되어 평화로워지고 있는가? 코로나19 사태는 기술과 성장이 가져온 세계의 변화와 관련이 없는가?

‘성장 한계’는 상식의 과학적 예견

만일 아니라면, 이대로 계속하면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것은 근거 없는 낙관일 뿐이다. 그리 머지않은 저기에 파국적 재앙이 있다는 것은 근거 있는 과학적 예측이다. 성장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직접 겪은 진실을 말하고,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함께 나누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법을 서로에게 배우고, 사랑이 사회에서 작동하게 제도화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다고 될까? “실제로 해보지 않고 확실하게 아는 방법은 세상에 없다.” 우리가 그런다고 될까? 그럼, 누가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권력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의 관심은 ‘표’에만 있다. 이들에게서 유한한 지구에서의 삶에 필요한 겸손한 성찰과 지혜로운 결단을 찾는 것이야말로 비현실적이다. 우리의 행동에 희망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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