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 메시지 정치의 명암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여성가족부 폐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올린 이 단문 메시지가 정치판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실제로 이 단문 메시지가 올라온 이후 추락했던 지지율이 반등했고, 이준석 대표는 역시 두 단어로 논평했다. “(지지율이 반등하는 데) 이틀 걸렸군.”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짧은 메시지로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정치기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가깝게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즐겨쓰던 전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는 트위터라는 매체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짧은 메시지로 재미를 봤고, 이것은 대선 승리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짧고 단순한 메시지는 현대의 포퓰리즘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다. 물론 민주주의 자체가 포퓰리즘을 벗어날 수 없고 포퓰리즘이 늘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에만 복무할 뿐, 국가 공동체의 중장기적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우리는 포퓰리즘이 특정한 집단을 도구화하거나 희생양으로 삼고 사회갈등을 심화시켜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하는 경우를 경험해왔다. 경계해야 하는 포퓰리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의 극우 포퓰리즘이 주로 이주자, 외국인, 소수민족·인종, 무슬림, 성소수자 등에 대한 공격으로 진행되었다면, 한국에서는 젠더가, 특히 여성가족부라는 특정 부처가 대상이 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여가부가 표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청년 남성들은 “여성혐오가 생기게 된 이유”로 “여성가족부 때문에”를 1순위로 꼽았었다. 윤석열 후보 측이 여가부를 “깔끔하게 박살” 내야 한다는 등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는 배경이다.

‘여가부’ 정치선동 재미 봤으니
다른 일에 같은 방식 동원할 수도
단순 메시지의 이분법적 논리를
지지율 반등에 동원하는 정치가
과연 국가와 사회를 위한 걸까

성평등 정책을 어떤 기관에서 어떻게 처리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고, 국가별로도 각기 다르다. 한국처럼 여성가족부를 두는 방법도 있지만, 각 부처에 성평등담당관을 두고 국가성평등위원회가 총괄하는 방법도 있다. 정부의 모든 정책이 성인지적 관점에서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보장만 있다면, 특정 부처나 담당관 없이 국무총리실에서 관리만 해도 된다. 성평등정책이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성별 위계로 인한 여러 가지 불평등을 다루는 것이라면, ‘성평등’가족부가 더 적합한 명칭일 것이다. 청소년·가족 문제는 다른 부처로 넘기고 성평등을 포함한 소수자, 인권에 관한 전반적인 정책을 다루는 부서로 확대·개편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에 대한 개혁 논의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여가부 폐지”가 정략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건설적인 논의가 가능한지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단문 메시지가 다음 단계의 논의로 발전해나갈 계기를 제공해준다면 그냥 여러 홍보수단 중 하나일 뿐 특별한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전후 맥락을 보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원래 윤석열 후보 측이 발표한 공약은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느닷없이 ‘여가부 폐지’가 등장했다. 대변인은 여전히 ‘명칭만 변경한다’고 발표했으나, 하루 만에 후보가 ‘폐지가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아동, 가족, 인구 감소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룰 부처의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했으니 성평등정책은 사라진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정말 성평등정책 자체가 없어져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지만,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공허한 설명으로 봉합되었다. 깊은 고민 없이 지지율 반등을 위해 일단 던지고 본 것이라는 자기 고백이었다.

이준석 대표는 민주당이 여가부 존치로 입장을 정한 경우에만 공개토론하겠다고 밝혔다. ‘여가부 폐지 여부’에 대해서만 토론하겠다고 논점을 정해준 것이다. 다문화사회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불법 이주자 추방 여부’로 환원시키거나, 난민과 세계의 책임을 논하는 대신 ‘난민 수용 찬반’만 놓고 얘기해 보자는 서구의 포퓰리즘 정치를 연상하게 하는 장면이다. 투표권이 없거나 수적인 소수를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관련 부서를 “깔끔하게 박살” 내서 어떠한 정치공학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가부라는 특정 부처를 놓고 벌이는 정치선동이 재미를 봤으니, 다른 주제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이 본격화되고 있지만, 이쯤에서 잠시 멈추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단문 메시지로 이분법적 논리를 전면에 내세워 지지율 반등에 동원하는 정치가 과연 “국가와 사회를 위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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