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간화의 늪읽음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의 에볼루션]비인간화의 늪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들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 쓰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 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영화 <내부자들>의 수많은 말들 중에서 스크린을 찢고 나온 최고의 명대사라 할 만하다. 이 대사는 원래 극중 유력 신문의 논설위원이 비리 기업의 총수를 안심시키기 위해 던진 멘트였다. 쌍둥이 세계인가? 그즈음 우리는 기자들 앞에서 거의 똑같은 말을 했다가 큰 징계를 받은 교육부 고위 관료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장대익의 에볼루션]비인간화의 늪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타인이나 타 집단을 개나 돼지로 여기는 게 왜 문제일까? 같은 인간임에도 누군가에게 개, 돼지 취급을 받는다면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같은 종인데 다른 종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불합리하다. 그런데 윤리적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리가 타자를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로 취급하는 순간, 그들을 함부로 대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그 동물이 혐오감을 주는 존재일 때는 더욱 그렇다.

영화 <블랙미러> 시즌3에 있는 <인간과 학살>편만큼 이 진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SF도 없을 것이다. 미래의 어느 군대, 주인공은 ‘바퀴벌레’라 명명된 존재들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 벌레들을 사살하는 업무를 수행 중이다. 그런데 그 바퀴벌레도 사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전투력 향상을 위해 전투보조 시스템을 뇌에 장착한 군인들에게만 괴물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그 ‘괴물’들을 사살했지만 전투보조 시스템의 오류로 그들도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죽인 것은 사람인가, 괴물인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중에 실제로 총을 발사한 병사는 대략 15~20%에 불과했다. 아무리 적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매우 괴롭고 힘든 일이었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군대는 사살을 쉽게 만드는 동기부여와 훈련법을 개발했고, 베트남전쟁에서는 85%의 병사가 총을 발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살상률은 여전히 낮았으며 무공훈장을 받은 군인들도 전쟁 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다시 <인간과 학살>. 사람을 괴물로 보이게 만든 전투보조 시스템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에게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무적의 군사무기지. 인간이 아닌 상대를 향해 총알을 발사하는 건 훨씬 쉬운 일이니까.”

이 SF는 인간의 두 가지 본성을 다룬다. 하나는 우리는 타인에 대해 공감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적을 죽여야만 자신이 살 수 있는 전쟁 상황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고통에 눈감지 않는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상대하는 타자를 우리보다 못한 존재, 즉 인간 이하의 존재(less human)로 취급하는 순간, 그들은 짐승이요, 벌레요, 물건일 수 있다는 진실이다. 민중을 개나 돼지들로 인식하는 권력자는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이유를 갖게 된다.

정치성향 다를 때는 비인간적 대접

비인간화는
전쟁·학살 등뿐만 아니라
일상서 광범위하게 진행
특히 그것은
일상의 언어로부터 시작

인간을 인간 이하로 지각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비인간화(dehumanization)’라고 부른다. 비인간화 심리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작동해왔고 현재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인종학살의 가해자는 희생자를 ‘해충’이라고 불렀다. 노예는 길들여진 짐승이었다. 원주민은 야만인이라 불렸고 이민자들은 전염병처럼 취급되었다. 아직도 유럽의 축구장에서는 흑인 선수의 등장에 원숭이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치매환자들은 좀비로 인식되기도 하며 홈리스들은 투명 인간이다. 야동 중독자는 여성을 물건처럼 취급하기 쉽다. 심지어 심신이 지친 의사가 환자를 무력한 몸뚱이로 대하기도 한다.

비인간화 현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하슬람 교수는 인간성을 두 개의 하위 차원으로 나눈다. 첫번째는 동물적 차원의 비인간화인데 이때에는 도덕성, 성숙함, 교양, 깊이, 그리고 정교함과 같은 인간의 독특성을 부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두번째는 기계적 차원 비인간화로서 따뜻함, 감정, 자율성, 융통성, 합리성과 같은 인간 본성을 부인하는 방식이다. 동물적 비인간화는 주로 인종학살과 같은 노골적인 형태뿐만 아니라 일상의 미묘한 인종차별과 같은 형태로도 작동한다. 반면 기계적 비인간화는 주로 기술 사용과 의료 행위 시에 작동하는데 이때 인간은 물건이나 도구로 취급된다.

고정관념의 작동으로도 비인간화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타인과 만났을 때, 그 사람은 타인이 자신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의도를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민감하다. 개인은 생존을 위해 타인에 관한 이 두 차원의 정보를 알아야만 한다. 여기서 타인의 의도에 대한 평가는 따뜻함에, 그 의도를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에 대한 평가는 유능함에 대응된다. 이 두 기준은 시대와 문화, 자극의 종류에 관계없이 사회적 지각의 보편적 기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국인을 상대로 한 연구에서 이 기준은 다음과 같은 고정관념에서 작동함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는 유능하지만 차가운 존재로 느껴지고(시기의 대상), 전문직 흑인인 경우 유능하면서 따뜻한 존재로 인식되며(존경), 주부는 무능하지만 따뜻한 존재로(연민), 가난한 흑인은 무능하고 차가운 존재(경멸)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연구자들은 차갑고 무능한 존재들(가난한 흑인, 홈리스, 약물중독자)이 비인간화되기에 가장 쉬운 존재라고 말한다. 실제로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화·비인간화가 일어나는 뇌 신경 네트워크가 존재하는데, 사람들이 홈리스나 약물중독자를 떠올릴 경우에는 이 네트워크의 활성이 매우 약하다. 즉 우리의 뇌는 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비인간화의 정도는 어떻게 측정될까? 일반인들이 인류 진화에 대해 갖고 있는 오개념(인류의 진화를 침팬지부터 현대인까지 일직선상에 놓은 이미지)을 활용해 타 집단의 진화 점수(0~100점)를 매기는 실험이 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우선 인종 측면에서 미국인은 자신들과 유럽인에게 대략 91점을 부여함으로써 가장 진화된 인종으로 자평했다. 하지만 무슬림에게는 78점, 멕시코 이민자에게는 84점, 한국인에게는 87점을 줬다. 더 충격적인 것은 피험자 중 무슬림의 진화 정도를 60점 이하로 준 사람이 무려 25%나 되며, “무슬림은 미국에 큰 해악을 줄 잠재적 암덩어리”라는 식으로 반감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비인간화 현상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보수나 진보나 비인간화에는 유사

그것 막을 확실한 방법은
자주 만나 공통점을 찾고
상대방이 나와 같은
인간임을 각성하는 것

대선정국서 상대에 대한
비인간화 어디까지 갈지
아슬아슬한 상황
대다수의 시민은 불편하다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어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반대쪽 진영 사람들이 자신들을 얼마나 비인간화하고 있다고 판단할까? 그리고 이 판단은 반대쪽 진영이 매긴 실제 비인간화 점수와 얼마나 차이가 날까? 후속 연구에서 이 차이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령 진보 진영은 보수 진영이 실제로 자신들을 비인간화한 정도보다 훨씬 더 심하게 비인간적 대접을 받고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해는 상대방에 대한 비인간화를 증폭시켜 그들을 향한 불공정한 행동이나 심지어 폭력행동을 낳을 수 있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타자에 대한 비인간화를 더 쉽게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흥미롭다.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위계를 공고히 하고 그 위계의 상층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권력을 가진 진보주의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가령, 실제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선거 기간에 자신을 반대하는 흑인들을 향해 ‘저능아’나 ‘개’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지만,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도 트럼프 지지자를 향해 ‘머저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인간화에 관한 최근 연구가 말해주는 바는 분명하다. 그것은 비인간화가 전쟁이나 학살 같은 노골적 분쟁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광범위하게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비인간화는 일상의 언어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거긴 완전히 무사하지 못할 거야”라는 식의 위계적 말투는 상대 진영을 비인간화하는 시작일 수 있다. 2020년 봄 중국인을 비하하는 용어인 ‘짱깨’의 급증도 일상 속의 비인간화라 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을 내뱉는 순간, 우리는 그 대상들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한다.

비인간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이 제안하는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자주 접촉하라는 조언이다. 이렇게 자주 만나면 공통점이 발견된다. 서로 핏대를 올리며 험한 말을 내뱉던 사람들조차도 반려견을 키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순간, 상대방이 나와 같은 멀쩡한 인간임을 각성한다. 대선 정국에서 상대 진영에 대한 비인간화가 어디까지 진행될지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찢재명, 윤도리 같은 밈 놀이가 자기 진영의 사기를 북돋을 수는 있겠지만, 상대 진영을 비인간화하는 늪으로 빠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이런 비인간화 말투를 매우 불편해하는 시민들이 다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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