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주의 패러독스와 대선 공식?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의 석학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의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이 필자의 흥미를 끌었다. 트럼프식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로 일관하면서 현재 미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5가지 패러독스와 그 대안을 제기하고 있는 그의 주장을 우리 대선의 맥락에서 시사점을 찾아봤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미국 민주주의는 탈양극화와 타협의 정치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탈양극화와 타협의 정치는 중간층을 차지하는 중원 장악의 룰이 작동해야 하는데, 당파적이고 편향된 선거 프로세스가 유권자들의 투표를 방해하게 되면 소수자 대표의 과잉과 편향이 고착화된다. 중도정치를 특징으로 하는 체제에서 정작 그 선거의 룰은 중도정치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 첫번째 패러독스다.

돌이켜보면 한국 역시 지난 총선에서의 부정선거론이 정권 정당성을 부인하는 확증편향을 낳고 있다. 대선 후보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종잡을 수 없고 편향된 조사 결과를 지지율 추이보다는 절댓값으로 사용하는 선거 전략가들이나 일부 언론의 행태는 실제 투표 결과에 대한 승복을 방해하는 착시를 낳게 된다. 미국 민주주의의 첫번째 패러독스가 고스란히 한국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패러독스는 미국 민주주의가 200년간 글로벌 민주주의의 모델이 되어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미국은 후발 민주주의 체제들이 성취한 제도 개혁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후발 체제들이 갖추어 온 민주적 거버넌스나 책무성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선거 제도 개혁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례성을 구현하지 못하는 단순 다수제 선거제나 미국 민주주의 보루였던 필리버스터 제도가 그 취지와 무색하게 미국의 변화를 가로막는 중요한 도전이 되고 있지만, 경직된 미국의 헌정이 변화를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사정이 낳아 보이긴 하지만, 지난 총선의 준연동형 비례제 룰에 대한 꼼수 논란이나 양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 대한 제3지대 후보들의 불만을 보면 한국의 민주주의가 직면한 패러독스 또한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네번째 패러독스는 미국 민주주의를 후행시키는 선거 관리 프로세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퇴행에 맞서는 대항력은 신속하지 않고 점진적으로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알래스카나 메인 주 등에서 선호 투표제를 도입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가 있지만 점진적인 제도 변화가 가져올 희망이 녹록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로부터 그의 가장 흥미로운 주장인 마지막 패러독스가 제기된다.

선거 제도 개혁이 어려워지게 되면 결국 포퓰리즘과 싸우기 위해 또 다른 대항적 포퓰리즘에 의존해야 한다는 다섯번째 패러독스를 낳는다는 지적이다. 제도 개혁이 단기에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서 포퓰리스트들에게 선거를 앉아서 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다이아몬드 교수의 진단은 두가지다. 대항적 포퓰리즘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경제 공정이나 정실 자본주의 척결과 같은 경제 분야여야 한다고. 필요하다면 각종 경제 불안정에 대한 공감과 상실에 대한 격한 분노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 경제 민주주의에 대한 저변을 확대해가는 것이 경제 포퓰리즘이고 그것이 대안 전략이라는 것이다.

정체성이나 이념에 근거해 제기하는 전투적 호소를 트럼프식 포퓰리스트의 선거 공식으로 몰아가며 조 바이든 재집권 전략을 제시하는 그의 기고문이 과연 민주주의론인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될 법도 하다. 하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처럼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리더들은 정체성 정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빵과 버터 등 경제 이슈에 대한 희망과 낙관의 메시지를 던져 왔다는 그의 주장은 혐오 선동에 진저리치는 유권자들에게는 참고할 만한 제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경제 포퓰리즘을 주목해야 한다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이 한국 정치에 적용 가능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선거 지형이 여당으로 기울어진 것인지 보수로 기울어진 것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더욱 현실적인 질문은 미국 민주당에 던져진 경제 포퓰리즘의 공식이 한국 민주당의 승리 공식이냐는 점이다. 한국 민주당의 경제 정책 이슈 연합이나 모발 공약류의 경제 포퓰리즘적 정책이 세력 연합으로 확장될 것인지, 야당의 여가부 해체와 같은 정체성 정치, 멸공과 주적론으로 드러나는 반중 반북 포퓰리즘이 더 큰 호소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관전 결과는 향후 미국 선거의 테스트베드로도 될 듯하다. 이래저래 한국 대선의 결과는 선거공학적으로 흥미로워지고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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