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녹음파일이 품은 ‘세 개의 불씨’

이기수 논설위원

7시간이 넘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유튜브 ‘서울의소리’ 기자와 5개월간 나눈 대화록이 16일 까졌다. 윤 후보의 정치 입문 직후 시작된 쉰두 토막의 통화란다. 법원에서 조건부 방송 승인이 떨어진 14일부터의 카운트다운만 사흘째, 김씨의 육성은 MBC 공중파를 탔다. 지난해 7월 ‘쥴리’ 시비, 10월 ‘개 사과’, 12월 ‘경력 허위·조작’을 잇는 네번째 김건희 파문이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10분 남짓 목소리가 전해진 방송에서, 김씨는 유튜브 기자에게 “국정원처럼 몰래 정보업을 해달라”며 “일 잘하면 뭐 1억도 줄 수 있지”라고 했다. “여기서 지시하면 다 캠프를 조직하니까”라면서…. 김씨는 “미투(Me Too)는 돈을 안 챙겨주니 터지는 것”이라며 “안희정(전 충남지사)이 불쌍하더만. 나랑 우리 아저씨(윤 후보)는 안희정 편”이라고 했다. 논란 될 말이 많이 빠진 변죽이라고 봤을까. MBC에 녹음파일을 줬던 서울의소리는 하루 뒤 “(김씨가) 조국과 정경심이 좀 가만히 있었으면 우리가 구속시키려 하지 않았다”고 했고,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무사하지 못할 거야. 경찰이 알아서 입건해요. 그게 무서운 거지”라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방송된 편집본이나 유튜브가 풀어내는 무편집본에서, 한 달 전 “처는 정치를 극도로 싫어한다”던 윤 후보 말은 식언이 되어버렸다.

17.2%. 시청률은 치솟았지만, 밋밋했던 방송은 동네북이 됐다. 국민의힘은 “먹을 것 없는 잔치”라며 취재윤리를 문제 삼았다. 서울의소리는 “괜히 MBC에 녹음파일을 줬나 싶다”며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이라고 맞섰다. 대화록을 알리고 막으려는 대치는 이제 송사로 접어들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김씨의 육성은 어떤 불씨를 품고 있는 것일까.

# 과거·실수가 아닌 ‘미래’ = 김씨의 허위 경력은 대선 후보 배우자로서의 자격을 묻고, 진상을 따져야 하되, 얼룩진 ‘과거’일 수 있다. 전두환 찬양을 희화화하며 반려견에게 준 사과 사진은 ‘실수’일 수 있다. 그러나 녹음파일 속에서 공식 직함도 없는 그가 선거캠프를 조직한다 하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 “조국 구속을 우리가…”라고 말하는 것은 결이 다르다. 수사와 선거와 국사에 개입해온 비선 실세는 ‘미래’의 문제일 수 있다.

# 퍼스트레이디의 역주행 = “무슨 강간한 것도 아니고…지금 와서.” 김씨의 미투 폄훼에 안 전 지사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는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했다. 평등한 여권(女權)을 대표할 퍼스트레이디의 성인지 감수성이라고 하기엔 민망하다. 윤 후보는 다음 계획은 내놓지 않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했다. 남녀를 갈라치는 선거전과 윤 후보 부부가 던진 미투 발언은 맥이 다르지 않다.

# 성역과 ‘무속 프렌들리’ = 김씨 얘기만 터지면, 국민의힘 선대위 인사는 “멘붕이 된다”고 했다. 후보 부부에게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워서다. 손바닥 왕(王)자와 개 사과의 첫 대응이 우왕좌왕한 캠프는 녹음파일에서도 그랬다. 1997년 이회창 후보가 아들의 병역비리가 터졌을 때 ‘공매’를 더 맞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김씨는 “나는 영적이라 도사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고, 그 말은 윤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법사 얘기로 번졌다. 김씨가 유튜브 기자에게 공격하라고 한 홍준표는 페이스북에 “3월9일까지 오불관언(吾不關焉)하겠다”며 뼈 있는 말을 썼다 지웠다. “최순실 사태처럼 흘러갈까 걱정스럽다.”

역대 11명의 대통령 부인이 있었다. 내조형(프란체스카·공덕귀·홍기·김옥숙·손명순·권양숙), 활동적 내조형(육영수·이순자·김윤옥·김정숙), 활동참여형(이희호)으로 나뉜다. 윤 후보는 집권하면 영부인 호칭과 제2부속실을 없앤다 했고, 김씨는 “아내 역할만 하겠다”고 했다. 1969년 제2부속실이 생기기 전의 프란체스카 여사와 닮은꼴이다. 반대로 캠프·선거·정치·인물·권력 얘기에 거침없는 녹음파일대로면, 김씨는 '여장부형' '베겟머리 정치형' 퍼스트레이디가 더 가까울 수 있다.

대선이 ‘삼국지’로 재편됐다. 표밭엔 후입선출(後入先出) 원칙이 있다. 왔다갔다 하는 들토끼를 품고, 집토끼를 다져야 이긴다는 뜻이다. ‘지지율 40% 안착’을 고지 삼은 이재명도, ‘선두 탈환’이 절대 목표인 윤석열도, ‘20% 교두보’를 찍고픈 안철수도 눈돌릴 여유는 없다. 곧 설이다. 목소리 커지면 피하는 게 상책이나, 꽤 많은 밥상·술상에선 정치로 얘기꽃이 필 게다. 후보의 리더십·공약·능력·매력이 견줘질 게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싫고….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꼽는 설상의 화두는 다섯이다. 대장동, 김건희, ‘철수정치’, 삼프로TV, 20대의 선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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