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타마왈라비, 줄어드는 아이들

이은희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기다리는 타마왈라비, 줄어드는 아이들

타마왈라비는 오스트레일리아 남쪽에 사는 토끼만 한 유대류다. 유대류의 특성상 타마왈라비 역시 매우 미숙한 상태의 새끼를 낳고 육아낭에서 이들을 오랜 시간 키운다. 그런데 타마왈라비의 생태를 관찰하던 과학자들은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난소를 완전히 제거한 타마왈라비 암컷이 거의 일 년이 지난 후에 새끼를 낳아 육아낭에서 기르는 것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난소가 사라져 생식세포조차 만들 수 없는 타마왈라비는 도대체 어떻게 새끼를 낳을 수 있었던 걸까?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는 타마왈라비의 임신 사이클에서 배아 휴면(embryonic diapause)이 일상적이기 때문에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임이 곧 밝혀졌다. 사람의 경우, 일단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이후의 과정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모종의 이유로 임신이 중단되어 유산이 일어날 수는 있지만, 임신의 과정 중 일부를 지연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생물종이 그런 것은 아니며, 타마왈라비를 비롯해 유대류의 30종 이상과 태반 포유류의 95종가량이 임신을 지연시킬 수 있고, 그 방식이나 지연 기간 또한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다. 타마왈라비의 경우, 배아가 특정 시기에 발달은 멈추었으나 생명력은 유지한 상태로 존재하는 배아 휴면 방식으로 임신을 지연시키지만, 작은갈색박쥐는 짝짓기 후 수컷에게서 받은 정자를 그들의 몸 안에 저장한 채 최대 138일까지 살려두는 방식으로 수정 자체를 늦춘다. 심지어 곰과 물범과 아르마딜로와 노루와 족제비를 비롯한 많은 동물종들은 임신의 진행 속도를 늦춰서 임신 기간을 조절한다.

타마왈라비에게 배아 휴면을 일으키는 원인은 육아낭 속에 든 다른 형제자매다. 타마왈라비는 육아낭에서 새끼를 돌보는 와중에 또 임신을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서로 발달 단계가 다른 여럿의 새끼들을 동시에 육아낭에서 키워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어미에게도 새끼들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손윗형제자매가 어미의 육아낭에서 젖을 빠는 동안은 이것이 억제 신호가 되어 수정란의 휴면을 유도한다. 지금 당장 태어나 한정적인 자원을 두고 다투기보다는 시간차를 두고 태어나는 것이 모두에게 윈윈이 되기 때문이다. 가용한 자원의 부족은 임신 지연의 주요 요인이 된다. 암컷 곰은 봄에 짝짓기를 하지만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지 않은 채 여름을 보낸다. 풍성한 가을 동안 잔뜩 먹고 충분한 양의 지방을 몸에 비축한 뒤에야 비로소 곰은 휴식기를 가지며 수정란을 착상시키고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키운다. 이때도 어미의 몸무게는 중요하다. 어미의 체구가 클수록 임신 기간이 짧아지고 수유 기간이 늘어난다. 곰은 체구에 비해 유달리 작은 새끼를 낳기에, 봄이 되었을 때 더 튼실한 새끼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임신 기간을 줄이고 대신 수유 기간을 늘리며 새끼의 안정적인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먹이가 풍부하면 임신 기간이 줄어들고 먹이가 부족한 경우 임신 기간을 연장시킨다. 심지어 먹이 공급량에 따라 보통 임신과 휴면 임신을 번갈아 시도하기도 한다.

이들이 임신을 지연시키는 것은 임신을 회피하거나 자손을 낳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아이의 생존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의 화두는 저출생 문제였다. 이미 2019년 말부터 우리나라는 인구 자연감소기에 들어섰고, 이는 현재 진행 중이다. 심지어 출생률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 감소하는 실정이어서 50년 뒤에는 인구가 지금보다 30%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는 출생률을 높이는 각종 공약과 정책들을 내걸고 있으며, 심지어 개정된 생명윤리위원회 기관운영지침에 따르면, 법적 배우자가 없는 비혼 여성이 단독으로 배아 생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추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좀체 출생률은 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이 모든 복잡한 문제 뒤에는 단순한 원인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생명체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들의 생존 가능성을 파악하는 데 예민하다. 이때 생존 가능성을 가늠하는 대상은 돈 외에도 사회적 시스템과 안전한 환경, 미숙한 어린 개체를 대하는 공동체의 태도 등 많다. 단지 첫만남지원금이나 육아수당처럼 금전적인 지원만으로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아이에게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이 든다면, 아이를 품기에 겁이 날 수밖에 없다. 이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인간에게 진짜 침묵의 봄은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물질 때문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본능에서 기인해 현실화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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