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글쓰기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대개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찰하는 글쓰기의 대표격인 일기조차도 흔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대안연구공동체에는 남에게 절대로 보여주지 않고, 심지어 자신도 읽지 않을 글을 쓰는 모임이 있습니다. 모닝페이지 글쓰기 모임입니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모닝페이지 글쓰기는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작가이자 <아티스트 웨이>의 저자인 쓴 줄리아 카메론이 주창한 창조력 회복 프로그램입니다. 매일 아침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공책에 3페이지를 쓰는 겁니다. 이 글쓰기는 자유롭다는 게 특징입니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오만 가지 생각들을 글쓰기 공식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받아씁니다. 글쓰기를 하는 이에게 뿌리 깊은, 타인의 비판과 자기 검열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쓴 글은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일정한 기간 동안은 자신도 읽지 않습니다.

공동체에서 이 모임을 이끄는 분은 기자 출신의 여행 작가입니다. <아티스트 웨이>를 읽으며 몇 년간 모닝페이지를 쓰다 영국 런던으로 날아가 줄리아 카메론이 진행하는 ‘아티스트 웨이 워크숍’에 참가하기도 했지요. 당초 공부를 하러 이곳에 왔던 그는 동료들에게 이 글쓰기를 권하다 급기야 공동체에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아티스트 웨이>란 책 제목에서 보듯이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를 위한 것입니다. 상상력, 영감, 창조력이 고갈되거나 상처 입은 작가, 화가, 시인, 영화감독, 배우, 도예가 등이 창조력을 되찾는 겁니다. 저자에 따르면 효과는 놀랍습니다. 붓을 들 수도 없었던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낙담한 시인이 시를 읊고, 헤매던 작가가 다시 원고지에 덤벼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비판과 자기 검열을 해체함으로써 억압된 창조력과 영감이 다시 생명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공동체에 개설된 프로그램에도 예술가는 왔지만 주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주부, 직장인, 청년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미 이 방법을 접한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 혼자 쓰다 작심삼일에 그친 이들이었습니다. 공동체의 프로그램 역시 <아티스트 웨이>에서 출발했지만 다른 것도 있었습니다. 매일 모닝페이지를 쓸 때마다 SNS로 인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혼자서는 며칠 만에 그만두던 글쓰기를 50일, 100일, 일 년 이상 지속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무엇보다 일상이 달라졌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매일 아침 꾸밈없는 글쓰기로 자신의 내면과 만난 결과였습니다. 용서하고 화해하며 인간관계가 편해졌다는 사람도 있었고, 꼬여있던 일의 매듭이 술술 풀리는 경험을 한다는 사람도 있었지요. 이 글쓰기로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모임이 시작된 지 2년여, 지금까지 참여한 사람은 150명이 넘습니다. 여기에 주기적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합류합니다. 이들이 매일 글쓰기를 인증하며 가벼운 소감을 적다 보니 네트워크와 연대도 생겨났습니다. 누구는 이를 글 그물망이라고 부르더군요. 이들은 글 그물망의 에너지로 지난 연말, 바자회를 열고 적잖은 금액을 모아 공동체에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모임을 이끄는 분도 바빠졌습니다. 이미 모닝페이지 글쓰기에 더해 매일 10분 글쓰기, 매일 식물 드로잉, 간헐적 단식 등 여러 파생 모임을 꾸렸습니다. 그가 모닝페이지 글쓰기를 적용하거나 변용해 하고 싶은 일은 많아보입니다. 묵언과 명상, 걷기, 노동 등과 결합한 치유 혹은 구원으로서의 글쓰기도 그중 일부입니다. 머잖아 남편이 은퇴한다는 그는 고독하고 느리고 자유로우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삶을 꿈꿉니다. 그 꿈은 이미 하나하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기에 따라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수단이면서 또한 스스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어가는 멋진 길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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