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25년, 백제 무령왕릉은 안녕한가

도재기 논설위원

백제 역사를 넘어 한국 고대사를 새로 쓴 무령왕릉은 폐쇄된 상태다. 훼손을 막고자 20여년 이어지던 내부 관람을 1997년에 막았다. 백제 무령왕이 523년 사망하자 525년 안장하고 529년에는 왕비를 합장한 무덤이 무령왕릉이다. 충남 공주의 무령왕릉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1971년이다. 1400여년 전의 능에서는 무려 5232점의 유물이 나왔다. 국보만 12건이다. 백제 문화의 재평가를 이끌고, 삼국시대의 숱한 수수께끼도 풀어줬다. 중국·일본과의 국제교류 등 동아시아사 연구의 지평도 넓혔다.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어떤 수식어로도 부족한 무령왕릉이 보존을 이유로 폐쇄된 지 25년이다.

도재기 논설위원

도재기 논설위원

무령왕릉은 지난해 발굴 50주년을 맞았다. 문화재청·국립공주박물관·공주시 등은 코로나19 속에서도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했다. 공주박물관의 특별전은 3월까지 계속된다. 무령왕 부부의 베개 등 5000여점의 유물 모두를 처음 한자리에 내놓은 귀한 자리다. 무령왕릉이 자리한 사적(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명칭도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격을 높였다. 학술대회도 열고, 왕릉원 일대에서는 새 왕릉을 찾는 조사도 벌어지고 있다.

발굴 50주년을 다양하게 기념했지만 정작 중요한 게 빠졌다. 무령왕릉의 안부를 묻지 않은 것이다. 현재 보존상황이 어떤지 문화재청도, 전문가들도, 언론도 언급이 없다. 짚고 챙겨야 할 본질적 문제는 제쳐두고 눈에 보이는 행사들에 매달린 것은 아닌지 아쉽다. 발견과 발굴, 개방, 보존관리, 연구 등 문화재를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 여러 시사점을 주는 게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은 1971년 7월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됐다. 나태주 시인의 표현처럼 “생각해 보면 꿈결”같이 등장했다. 급히 구성된 발굴조사단이 구운 흙벽돌(전돌)로 막은 무덤 입구를 열면서 조사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무자비한 도굴의 손길을 기적처럼 피한 아치형의 아름다운 벽돌무덤(전축분) 왕릉이었다. 발굴조사는 적어도 2~3년이 걸려야 했으나 하룻밤 새 끝날 정도로 부실했다. 한국 고고학 발굴사의 대표적 오점이라 할 만하다. 그나마 경주 천마총, 황남대총 등 이후 왕릉들 발굴조사에 귀중한 교훈을 준 게 다행이다.

발굴 수난을 당한 무령왕릉은 이듬해 내부를 개방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훼손이 가속화됐다. 왕릉에 걸맞게 복원한다며 원래보다 봉분을 크게 쌓아 무게를 견디지 못한 전돌들이 손상됐다. 벽체가 기울고, 내·외부 온도차로 결로 현상, 녹조류도 생겼다. 1400여년의 세월을 버틴 무령왕릉이 불과 20여년 만에 구조적 안전성마저 위험했다. 결국 문화재위원회는 1997년 7월 보존관리 정책에서 최악이라는 ‘폐쇄’를 결정했다.

지금 무령왕릉은 내부 사진을 담은 입간판으로 입구가 막혀 있다. 관람객들은 모형 전시관을 찾아 아쉬움을 달랜다. 필자를 포함해 폐쇄 전에 대면한 많은 이들은 무령왕릉이 선사하는 감흥과 아우라를 잊지 못한다. 연꽃 등을 장식한 전돌 수만 장을 쌓아 정교하게 구축한 왕의 무덤은 시공을 초월해 울림을 주는 웅숭깊은 예술품이다. 역사적 차원을 넘어 인간의 유한성 같은 실존적 물음으로 삶과 죽음의 의미까지 성찰하게 한다. 무령왕릉이라는 문화유산이 지닌 특별한 고유성이다. 모형 전시관이 줄 수 없는 ‘찐’의 격조다.

무령왕릉 같은 삼국시대 왕릉은 발굴 이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다. 왕릉급이지만 무덤 주인공을 몰라 ‘총’이 붙은 황남대총은 발굴 후 흙으로 완전히 덮었다. 인근의 천마총은 내부를 전시실로 개방해 관람객이 줄을 잇고, 금관총은 별도 전시관을 추진 중이다. 방식은 달라도 저마다 보존이 최우선이다. 문화재 특성상 한번 훼손되면 원상복구가 힘들어서다. 신라시대 유물 ‘비단벌레장식 금동말안장가리개’는 황남대총 발굴조사에서 나온 지 4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둠 속 글리세린 용액에 담겨 경주박물관 수장고에 있다. 현대 과학기술로도 보존 방법을 찾지 못해서다.

무령왕릉 폐쇄도 원형 보존을 위해서 당연하다. 그럼에도 문 닫은 지 25년에 이르렀다. 그동안 무령왕릉의 보존 상황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궁금하다. 녹조류는 없어졌는지, 구조적 안전성은 높아졌는지, 여전히 영구 폐쇄해야만 하는 보존 상황인지, 혹시 보존 환경이 나아져 제한적인 공개라도 가능한지…. 향후 장기적 보존관리책은 무엇인지 등 질문이 꼬리를 문다. 무령왕릉은 과연 안녕한가, 이제서야 그 안부를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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