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안보, 정책 대결로 국면전환이 필요하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외교안보, 정책 대결로 국면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추구해온 종전선언을 거부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인 한반도 평화번영 정책, 즉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노력이 실패했음을 말해준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은 어느 정부보다 강했다. 그러나 2019년 하노이 회담 이후 전환이 필요할 때, 전환하지 못하고 집착했다. 외교에 생사존망이 걸릴 수도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경시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한국은 그간 개발도상국, 약소국으로서 추종하는 외교를 해왔다.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선 후보들은 외교안보 분야에 소홀했다. 당선되고도 특별한 노력 없이, 소수의 측근에 의존했다. 대통령의 측근들은 검증 없이 마치 국민들로부터 100%의 전권을 받은 양 행동했다. 주요국 대사 직위는 측근 정치인들로 채워지고, 외교 생태계는 고사 직전이다. 외교안보 분야는 경제 분야와는 달리 이해 자체는 물론이고 정책에 대한 검증도 쉽지 않다. 그간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질서하에 외교안보 분야에서 지도자의 무지나 판단 착오는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에 귀의함으로써 비용 최소화가 가능했다. 현재는 그 판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전략적 경쟁 시대에는 미국조차 변수가 됐다.

향후 5년은 우리의 50년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겠다라는 위기감이 크다. 미국 중심의 패러다임이 요동치면서 21세기 새로운 국제정치 환경이 밀려오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시기에 미·중은 거의 전쟁심리로 상호 대응한다. 한국에는 지속적으로 선택의 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북한은 핵미사일 역량을 공고화하여 한국 안보에 존립의 위기를 안겨주고 있다.

대선 후보들 국제정치 이해도 낮아

차기 지도자는 다음 다섯 가지 문제에 답을 갖고 임해야 한다. 첫째, 미·중 전략경쟁에서 생존·공존·번영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둘째, 전술핵과 초극음속 미사일까지 보유하겠다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전략 및 군사적 역량이 필요하다. 셋째,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신흥 안보 이슈에 대한 비전을 지녀야 한다. 다섯째, 기존의 의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 참여할 의지와 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대선 과정은 후보들과 측근들의 부패와 도덕성 자질 등에 집중하면서 온통 진흙탕 싸움이다. 국민들은 짜증나고 절망적이다. 외교안보에 대한 논의나 공부에 시간을 할애할 여력이 거의 없어 보인다. 이재명 후보의 대일 발언이나 가쓰라·태프트 밀약, 윤석열 후보의 사드나 선제타격 발언 등을 보면 후보들의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도가 대단히 낮다. 국내 정치가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분석을 덮고 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캠프 인사나 주변 전문가들도 과거의 해법과 정쟁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면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도 국내 분열·갈등·혼돈은 지속되고, 대외적인 리더십과 해법은 찾기 어려운 위기 상황이 우려된다.

선진국 지도자로서 차기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평화, 번영을 위한 확실한 비전이 필요하다. 새로운 비전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에 내재된 3대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첫째는 강대국 외교와 남북관계의 불균형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을 넘어 좀 더 중장기적인 미·중 전략경쟁 위주의 전략으로 재편해야 한다. 둘째는 안보와 경제의 불균형이다.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점증해왔음에도 우리 외교에서 경제통상은 핵심 의제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 이제 세계 10위권으로 부상한 경제를 외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셋째는 보수와 진보의 불균형이다. 보수는 강대국 외교(특히 한·미관계), 진보는 남북관계를 중시해 왔다. 이 때문에 정권 교체에 따라 외교의 중심축이 좌우로 심하게 진동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국가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일관되고 총체적인 외교를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 최소한의 초당적 합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외세에 대한 심리적 의존성도 극복해야 한다. 국력은 자강·동맹·국제연대의 총체적 합이다. 국제정치의 현자들은 자강 정책을 최우선으로 할 것을 주문한다. 현 국제정치 체제에서는 모두가 선(善)이다. 자국의 이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상호작용하는 국제정치를 읽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미·중 전략경쟁 시기 한반도 상황은 대단히 위험하다. 정치 지도자의 무지는 국가 존망의 위기로 귀결된다.

대선에 나선 정치 지도자들은 이제 근본적인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국제정치 속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해 나갈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 전략가들은 치열한 논쟁에 나서야 한다. 대선은 헤어나올 수 없는 개인 도덕성 검증에서 정책 대결로 전환시켜야 한다. 외교안보 분야가 그 전환을 알려야 한다. ‘하루빨리 미국을 선택하라’ ‘북한과의 민족적인 유대 강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자’는 너무나 익숙한 담론은 현 국제정치 본질에 대한 상상력의 부족을 보여준다. 안이하고 무책임해 보인다.

전문가 중시하고 듣는 능력 절실

우리가 직면할 세계는 변수가 더 많고 시나리오도 더 복잡하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이념적인 편중보다는 실용적인 태도에 입각해 자신의 한계에 대한 깊은 자각, 국제정치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이해, 국민적 공감대를 통해 대외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지도자는 여야를 넘어 전문가를 중시해야 하고, 듣는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직면한 역사적 도전에 답할 역량을 발휘할 후보가 있다면, 나는 그가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외적인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나라가 흔들리면 부동산 문제도, 민족 문제도 차후의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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