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까치는 설을 쇠지 않는다읽음

엄민용 기자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윤극영의 동요 ‘설날’의 일부다. 노랫말처럼 예전에는 설을 앞두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새 신과 새 옷을 사주곤 했다. 때때옷을 입고 일가·친척 어른은 물론이고 동네 어르신들께도 세배를 다녔다. 직장인들은 회사 상급자에게 인사드리러 몰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가족끼리 며칠 쉬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는 것이 설의 새로운 풍속도가 됐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처럼 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설’이라는 말도 그렇다. 지금은 ‘설’이 추석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로 흥이 넘치는 때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설’의 유래담 중 하나는 ‘서럽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옛날에는 추위와 가난 속에서 맞는 명절이니 무척 서러웠을 법하다.

또 ‘낯설다’ 따위 낱말에 들어 있는 ‘설다’와 “근신하고 삼가다”는 뜻의 ‘사리다’에서 설이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며, 설을 맞아 떡국을 먹으며 한 ‘살’을 더 먹듯이 “나이”를 뜻하는 ‘살’이 ‘설’과 같은 뿌리의 말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들 주장을 종합하면 옛날에는 설날을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날로, 만사에 삼가고 조심해야 하는 낯선 날’로 여겼다는 얘기다.

동요 ‘설날’에 등장하는 ‘까치’도 변한 말이다. 원래는 누구나 다 아는 새 이름 까치가 아니었다. 이설(異說)이 있기는 하지만, ‘까치 설날’은 ‘아치 설날’이 바뀐 말이라는 게 국어학계의 정설이다. 실제로 ‘까치 설날’은 옛 문헌에 나오지 않는 말이다. 대신 옛날에는 ‘작은 설’을 가리켜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고 했다. ‘아치’와 ‘아찬’은 ‘작은(小)’의 뜻을 지닌 말로, 이북 출신인 윤극영이 ‘아치’의 경기도 사투리라고 할 수 있는 ‘까치’로 노랫말을 지은 듯하다. 즉 음력 정월 초하루가 ‘큰 설’이고 그 전날인 섣달그믐이 ‘아치설(작은 설)’인데, ‘아치설’이 ‘까치설’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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