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 시인
[詩想과 세상]못다 한 말

설원을 달렸다

숨이 몸보다 커질 때까지

숨만 쉬어도 지구 반대편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너를 보는 게 좋았다

여기 너무 아름답다

우리 꼭 다시 오자

겨울 별자리가 가고 여름 별자리가 올 때까지

녹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박은지(1985~ )

어떤 말은 미안해서, 어떤 말은 부끄러워서, 어떤 말은 불편해서, 어떤 말은 너무 늦어버려서 할 수가 없다. 가까운 사이라 더 속말을 꺼내놓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다시는 만나지 않을 사람에게 풀어놓는 게 편할 수도 있다. 선의로 한 말을 왜곡해서 받아들여 관계가 틀어지기도 한다. 감정이 섞인 말에는 가시가 돋아 있다. 그 가시를 삼키면 내가 다치고, 내뱉으면 상대가 다친다. 못다 한 말이 쌓여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약속이나 기다림은 익숙한 것이지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어쩌면 세상의 변화보다 더 빨리 변하는 게 사람의 마음인지 모른다. “우리 꼭 다시 오자”는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는다. 봄 지나 여름이 와도, 너는 오지 않는다. 사랑하다가 헤어진 것일 수도, 영원한 이별일 수도 있다. 그래도 기다린다. 시인은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정말 먼 곳’)진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사람을 만”나다 정작 ‘가까운 사람’을 잃을 수 있다.


Today`s HOT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APC 주변에 모인 이스라엘 군인들 파리 올림픽 성화 채화 리허설 형사재판 출석한 트럼프
리투아니아에 만개한 벚꽃 폭우 내린 파키스탄 페샤와르
다시 북부로 가자 호주 흉기 난동 희생자 추모하는 꽃다발
폴란드 임신중지 합법화 반대 시위 이란 미사일 요격하는 이스라엘 아이언돔 세계 1위 셰플러 2년만에 정상 탈환 태양절, 김일성 탄생 112주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