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광신

이융희 문화연구자

선거를 앞두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광신도들의 전쟁터가 된다. 본디 SNS는 개인과 개인을 이어가며 세상 모든 이슈를 수집하는 공간인데 이 모든 것들에 정치와 관련된 사족이 붙기 때문이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한 사람이 오늘따라 기르던 개의 이빨이 예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올린다. 그걸 본 다른 누군가가, ‘이 개는 정말 예쁘네요! 정치권에 있는 그 개는 정말 더럽게 생겼는데…’ 같은 댓글을 단다. 기르던 개가 좀 많이 짖어 속상해 글을 올렸더니, ‘온 세상에 개 짖는 소리가 가득하네요. 오늘 TV에서도…’ 같은 댓글이 달린다. 꽃 사진을 올리면 어느 순간 자연경관과 환경 개발에 대한 정책 얘기가 달리고, 심지어 게임 플레이 사진 하나만 올려도 게임 관련 정책으로 토론이 열린다.

한두 명의 답글만 평화롭게 달리는 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서로 다른 정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타임라인에서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SNS 분위기는 난장판이 된다. 심지어 아무 상관없는 글에 오로지 자신의 정치 이념과 최근의 정치 이슈를 발작적으로 이야기하는 자·타칭 ‘정치평론가’도 넘쳐난다. 그런 댓글에 불쾌감을 표하면 물러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어떻게 정치에 무관심할 수 있냐며, 세상 모든 불합리와 부조리함이 바로 그 댓글 하나 때문에 시작된 것처럼 광분한다.

나는 이런 자들을 정치 광신도라고 부른다. 그들은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 자기 자신이 겪고 있는 모든 부조리가 왜 일어났는지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그저 정치를 탓하고 욕하는 것뿐이다. 그들의 기본 감정은 끊임없는 분노이고, 이 분노는 아무것도 해소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 자신에게 부조리한 사회에 대해 분노했다는 작은 만족감을 줄 뿐. 즉 이러한 분노는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고 분노만으로 모든 것을 해소하며 자신의 감정을 정치에 위탁하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대부분의 부조리함은 정치 탓일지도 모른다. 경제가 경색되어 있고, 계층은 나눠져 있고, 보이지 않는 현대 사회의 계급은 만연하며,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의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이리라. 실제로 오늘 하루 일어난 대부분의 문제도 정치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정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광신도들이 여전히 분노에 싸여 있는 건, 그 어떤 목소리도 정치적으로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정치 광신도들은 온라인 곳곳에서 자신의 분노를 전시하고 있다. 이번 대선은 특히 유력 후보들에 대한 수많은 분노가 자리 대부분을 차지한 나머지, 정책과 같은 세세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오히려 정치권은 이러한 분노를 동력으로 삼아 자신의 힘으로 만들려는 것인지 어떤 이야기도 그럴듯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저 끝없이 타인이 분노하게끔 장작을 던져넣을 뿐.

이제 우리는 광신적 분노의 연쇄를 끊기 위해 제대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코로나로 인해 우울이 가득한 시대이다. 이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누적된 분노는 결국 사회를 병들게 할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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