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알토와 자작나무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날씨가 추워져 영하 10도를 오르내린다. 땅은 꽁꽁 얼어붙고 바람은 매섭다. 나무들도 앙상한 가지를 내놓고 벌벌 떨고 있고, 풀들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런 추위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나무 중에는 자작나무가 으뜸이다. 한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툰드라 지방에서도 끄떡없다. 유럽에 최후의 빙하가 물러나고 습하고 나무 하나 없던 때,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것도 바로 자작나무였다. 그래서 자작나무를 흔히 ‘선구수종’이라고 한다. 현재 북유럽의 대표 수종 중 하나가 자작나무다. 강원도 인제의 자작나무숲도 유명하지만, 사람이 심은 것이다. 추위에 강해 한반도에서도 북한의 함경도나 백두산 지역에만 자생한다.

자작나무를 단지 추위에 강한 나무로만 평가한다면, 조금 아쉽다. 우선 백색의 수피 때문에 생김새가 독특하고 껍질은 기름 성분이 많아 지붕 재료로도 쓰인다. 목재는 가볍고 단단하며 질기고 유연하여,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비행기 프로펠러 제작에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하기도 했다. ‘나는 자작나무’라는 별칭도 그래서 생겨났다. 최근에는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구가 시중에 많아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가장 질 좋은 자작나무 목재는 핀란드에서 수입되는데, 핀란드 국목(國木)이 자작나무다.

북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작나무로 가구를 제작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핀란드 출신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의 작품이다. 건축이나 가구뿐 아니라 생활용품에도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한 그의 작품 속에는 북유럽의 자연이 숨어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자라는 자작나무를 눈여겨보았다. 자작나무숲 사이로 산란하는 빛은 분명 그에게 공간적 영감을 주었을 텐데, 이는 나무를 표면재보다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로 사용한 그의 건축에서 잘 드러난다. 그가 만든 가구는 얇게 켠 자작나무 합판을 여러 장 겹쳐, 틀에 넣고 압력과 열을 가해 구부리는 방식이었다. 그는 자작나무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가구에 유려하고 자유로운 곡선을 부여했다. 1933년에 제작된 그의 대표작 ‘스툴 60’은 가구 디자인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L’자로 휘어진 다리는 하중을 지탱하는 데 매우 유용하고 포개서 보관하기도 용이하다. ‘스툴 60’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세계적 명품인 ‘스툴 60’의 유사품이 우리 집에도 소장되어 있으니, ‘이케아 스툴’로 더 많이 알려진 바로 그 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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